제목 | 하느님 중심의 삶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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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9-02 | 조회수56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하느님 중심의 삶 -하느님 알기, 나를 알기, 최선을 다하기-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오늘 역시 집무실 벽에 붙어있는 십자고상과 태극기를 바라보며 십자성호와 영광송후 만세오창후 시작한 하루입니다. 나라가 백척간두, 풍전등화, 누란의 위기에 처한 작금의 상황이 계속되는 동안, 또 한반도의 평화와 국내의 안정이 이뤄질때까지 계속될 만세오창입니다. 일기쓰듯 하는 강론이요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찾는 마음으로 쓰는 강론입니다. 희망을, 빛을, 길을, 눈을, 중심을 잃은 세상이요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방황이요 병도 죄도 많습니다. 참으로 궁극의 희망은, 빛은, 길은, 눈은, 중심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으로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뿐 아니라 세상의, 나라의 희망이, 빛이, 길이, 눈이, 중심이 되어야 할 시대가 도래한 듯 합니다.
“+부고; 친애하는 수사님들, 2023년9월1일 한낮에 우리의 친애하는 형제, 로마누스 수사님이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평화롭게 선종하셨습니다. 로마누스 수사님은 1938년9월10일 란트하우젠에서 태어났고 1961년 5월 12일 서원했습니다. 장례미사는 9월5일 화요일 10:30에 열립니다.”
게시판에 소개된 저보다 11살 연상이니 만85세에 복된 죽음을 맞이한 독일의 수도형제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도 축제일수 있습니다. 산날보다 죽을날이 점차 가까워지니 하루하루 날마다 본질적 깊이의 선물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자각을,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희망의 순례자 교황님의 홈페이지 1면 기사 제목,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대한 문화의 민족, 몽골에 도착하다”에 이어 화려한 의상을 한 우리와 흡사한 아름답고 순박한 모습의 몽골인들이 친근하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일어나자 만난 밝은 뉴스들입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아름다운 영혼들을 가득 만났던, 참 아름답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아침식사후 매일미사에 참석하는 참 좋은 자매님이 직접 수녀원까지 차량봉사를 해줬고, 수녀님들의 친절한 환대에 이어 9;30-12시까지 여러 수녀님들에게 면담고백성사를 드렸습니다. 만났던 모든 수녀님들의 영혼이 참 아름다웠고 모두가 진지했고 한분한분이 참 귀한 고유의 성소자임을 발견하고 확인했습니다.
새삼 고백성사는 벌이 아니라 화해와 일치, 치유와 위로의 성사임을 깨닫습니다. 지옥같은 험난하고 힘겨운 세상 안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위로와 치유, 격려의 따뜻하고 힘있는 주님의 말씀일 것입니다. 주방소임이 행복하다던, 공동체를 참으로 사랑하고 주방일을 좋아한다는 주방장 수녀는 무남독녀 외동딸이고 홀로 계신 노모는 전화할 때 마다 “착하게 살라!”는 마지막 말이라 했습니다. 면담성사시 수녀님들의 아름다운 영혼,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배우고 위로받고 치유받고 격려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원장수녀님도 얼마나 밝고 환한 모습인지 열정과 순수를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좌우간 모든 수녀님들이 웃는 밝은 모습으로 성사를 봤습니다.
5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리모델링 수녀원 공사는 10월 중순쯤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일련의 공사가 어수선한 중에도 공동체의 평화의 일치도 견고해짐을 감지했습니다. 더구나 어제는 9월 순교성월 첫날이었고, 수녀원 리모델링 공사중 종탑을 완성한 날이라 수녀원 중심에 위치한 가장 높은 종탑에 위치한 동으로된 새벽을 깨우는 수탉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마음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순간 위로와 평화, 치유를 느꼈습니다.
“수녀님, 마음 중심에 종탑을 지니고 사세요!”
덕담도 드렸습니다. 마침 엊그제와 어제의 복음 주제도 “깨어 있어라!” 였는데 종탑 꼭대기의 수탉은 그대로 깨어있음의 상징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떠날 때 노동에 지친 창백하고 마른 병색이 짙은 두 일꾼들의 휴식하던 모습도 계속 눈에 밟혔습니다. “억강부약, 대동세상, 기본사회”라는 어느 정치지도자의 비전이 꼭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는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더불어 그립게 떠오르는 세 얼굴, 참으로 백성을 사랑했던 세종과 정조의 성군(聖君)과 다산 정약용 학자입니다.
역시 참 좋은 두분의 수녀님들이 수도원까지 차량봉사해 주었고, 배즙과 제 아끼는 시집, “하늘과 산”을 선물했고, 고백성사를 받기전 고백신부님에게도 선물했고 고백성사를 받은후, 서로 강복도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시국에 대한 걱정도 나눴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바 현 시국에 갖는 위기의식입니다. 답은 기도뿐이요 하느님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저녁식사전 언뜻 봉사차 온 자매님의 일에 전념하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참 아름답고 사랑스런 세 장면은 1.고백성사를 보기위해 겸손히 기다리는 모습, 2.기도에 전념하는 모습, 3.맡은바 일에 전념하는 모습이요, 이런 장면을 대할 때 마다 삶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됩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향기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어제 수녀원 중심부에 세워진 수녀원 종탑을 보는 순간 깊이 각인된 영원한 바라봄의 대상, 삶의 중심인 하느님입니다. 새삼 강조하는바,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요 빛이요 길이요 희망이요 눈이라는 것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유일한 처방도 하느님 중심의 삶뿐입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중심의 아름답고 사랑스런 행복한 구원의 삶이겠는지요?
첫째, 하느님을 아는, 하느님 공부입니다. 예수님을 공부하여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이 바로 하느님을 닮아가는 하닮의 여정입니다. 예수님 공부가 바로 하느님 공부요, 날마다의 복음을 통해 배웁니다. 오늘 복음에서 다섯 탈렌트를 받았다가 다섯 탈렌트를 남긴 이, 두 탈렌트를 받았다가 두 탈렌트를 남긴 이, 바로 주님을 알았습니다.
자비하신 주님을 깊이 사랑했고 신뢰했기에 최선을 다했고 똑같이 “착하고 성실한 종아!” 칭찬을 받습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바, 업적의 양이 아니라 삶의 성실도입니다. 각자의 주신 몫에 충실하면 됩니다. 이래야 자존감 높은 삶입니다. 주님을 아는 평생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둘째, 자기를 아는, 자기 공부입니다. 평생 주님 공부와 함께가는 평생 자기공부입니다. 정말 지혜롭고 겸손한 자는 자기를 아는 사람입니다. 다섯탈렌트 받아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받아 두 탈렌트 남긴이 정말 자신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비교할 것도 없이 자기 받은 몫에 충실했습니다. 비교로 인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제받은 몫에 충실하며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자존감 높은 삶을 살았습니다.
셋째,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바로 진인사대천명의 삶이요 지성이면 감천의 삶입니다. 삶은 모험이요, 은총의 선물임과 동시에 평생과제입니다. 다섯탈렌트 받아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받아 두 탈렌트 남긴이, 모험적 인생을 결코 자포자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용감히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함으로 평생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에 감동한 주인은 이들을 격찬합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오늘의 비유도 하늘 나라의 비유요, “깨어 있어라”에 연장되는 복음입니다. 지옥같은 세상에 천국을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줍니다. 언제 어디서든 깨어 제자리에서 제몫에 충실하며 제정신으로 제대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바로 거기가 하늘 나라 천국입니다.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 일행 역시 이런 삶을 격려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더욱더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면서 시종여일, 하느님을 아는 공부, 자기를 아는 공부, 제몫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얼마나 결정적 구원의 삶인지 깨닫습니다. 그러나 한 탈렌트 받은 이는 완전히 실패인생이 되었으니, 그는 하느님을 몰랐고, 자기도 몰랐고, 그리하여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선물이자 과제인 삶을 완전히 방치했습니다.
그는 현상유지를 택해 모험하지 않았고 무책임했고 태만했고 좌고우면 우유부단 소심했고 자기를 닫은 삶이었습니다. 그가 정녕 주님을 믿어 알고 자기를 알고 자기를 열어 최선을 다했다면 한 탈렌트 받아 한 탈렌트를 남겼어야 했습니다. 업적의 양보다는 과정의 충실도를 보시는 하느님을 잊었습니다. 영적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적든 많든 받은 은사에 태만하면 지닌것조차 잃습니다. 주님의 선언이 참 엄중합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 중심의 제 삶의 자리에서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런 행복한 삶을 원하십니까?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고, 하느님을 아는 평생 공부, 자기를 아는 평생 자기 공부와 더불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제몫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아멘.
PS: 내일은 저의 묵상글과 신부님 묵상글 못올립니다. 성당에서 성지 순례를 아침 새벽에 모여서 같이 갑니다. 양해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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