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37. 예수님 따르는 법 / 갈릴래아 활동기[2] / 부스러기 복음[6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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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09-09 | 조회수34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7. 예수님 따르는 법(마태 16,24-28; 마르 8,34-9,1; 루카 9,23-27) / 공관복음[6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을 따르려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걸어야 하는 고난의 길을 함께 가야 한다고 이르신다. 그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기 전에 군중들도 함께 가까이 부르심으로서, 이 길을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임을 암시하신다. 이는 수난이 예고될 때마다, 그것이 제자들에게 가져올 결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뒤따른 것에 비해서, 앞으로 당신과 당신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는 모두의 관심사이기에 그렇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와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이익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을 따르면서, 당신에게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이는 누구나가 지녀야 할 자세임을 밝히신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따름’에 관한 피상적인 생각을 물리치신다. 따름은 예수님을 그냥 뒤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다’에 관해서는 개인적 응보 사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깊이 뿌리를 내린 이 사상은 새롭게 두 가지 특징을 부여받는다. 첫째, 마지막 날에 각 사람을 심판하실 분은 사람의 아들 곧 예수님이시다. 둘째, 장차 ‘갚아 주실 분’만 생각하며 실천하는 선행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또한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란다. 더구나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라나.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종말론적인 동태 보상률을 제시하는데, 이는 현재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 우리가 취하는 태도에 따라 다가올 종말에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태도를 취하신단다. 이 말씀은 초대 교회가 처한 박해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 갈 수 있도록 가르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까지, 예수님의 몇몇 동시대인이 죽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내포한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원칙적으로 다른 모든 예언자처럼, 당신 세대에 일어날 일을 예고하신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의 이 영광스러운 발현이 언제 어떤 사건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어떤 이는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을, 또 다른 이는 거룩한 변모를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데 필요한 두 가지 방법인 조건을 제시하신다. 하나는 자신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마다 주어진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중심만의 삶에서 벗어나 타인 중심,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 앞에 놓인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삶을 의미한다. 특히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몸소 걸어가신 그 고난의 길이며 죽음을 향한 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 길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면서 ‘누구든지’ 함께 가야 한단다. 이 거룩한 변모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자 마련된 것일 수도.[계속] [참조] : 이어서 ‘38. 영광스러운 변모(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 ’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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