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학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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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9-13 | 조회수35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학자 기념] 요한 6,20-26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희망해야 할 참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그것은 진흙 속에서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진 시련이 내 앞을 가로막아도, 깊은 절망이 나를 삶의 밑바닥까지 끌어당겨도,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혀 제 정신을 차리고 있기조차 힘들어도,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아야 참된 행복입니다. 그런 행복은 세상이 권하는 특정 조건들을 채운다고 해서 얻어지는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세상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져 하느님만 바라볼 수 있어야, 그분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로 기뻐하고 그분 사랑 안에 머무르고 있음에 만족할 줄 알아야 비로소 나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을 알려주시는게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난 속에 굶주려야만, 지극한 슬픔 속에 눈이 짓무를 정도로 울어야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오해와 미움을 받아야만, 사람들에게 욕먹을 정도로 대단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단지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이유로 모욕과 배척을 당해야만, 나중에 그 보상으로 행복이 주어지는 거라면, 그건 돈과 명예와 권력이라는 조건을 먼저 채워야만 나중에 행복해질거라는 세상의 논리와 다를 게 없지요. 즉 예수님의 ‘행복선언’을 행복을 얻기 위해 달성해야 할 또 다른 조건으로 이해한다면, 자기 꼬리를 쫓아 제자리를 뱅뱅 도는 강아지처럼 늘 나와 함께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평생 쫓기만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마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난하다고 해서 부유한 이들을 시기 질투 하지 않고, 내가 굶주린다는 이유로 남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으며, 자기 안에 큰 상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고, 주님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분을 원망치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세상 그 무엇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고 온 마음으로 오롯이 하느님을 향하니 그분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는 겁니다. 반면에 아무리 부유해도 도무지 만족이란걸 모르고, 제 배가 부른데도 남의 것을 욕심내며, 다른 사람들 마음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나만 웃고 즐기면 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잘 보이느라 하느님과 그분 뜻을 놓치고 사는 이들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세상 것들에 자신을 옭아매느라 행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단절되니 참된 행복을 누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겁니다.
세상 것보다 주님이 먼저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굳게 믿고 그분께 나를 의탁한다면 가난해도, 굶주려도, 온 세상으로부터 미움받아 혼자가 되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권하는 행복의 조건들을 욕심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럴 때 “행복하여라”라는 주님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실현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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