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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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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9-18 조회수266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루카 7,1-10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병들어 죽어가는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해주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하는 루카복음의 내용은 다른 복음서와 좀 다릅니다. 백인대장이 직접 예수님을 찾아가 청하는게 아니라, 그 지역 원로들을 보내어 종을 치유해달라고 청하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언뜻 보면 그가 굉장히 권위적이고 무례해 보입니다. 예수님께 자비를 구하는 입장이면서도 직접 가서 공손하게 청하지 않고, 로마 주둔군의 간부라는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나이 많은 이스라엘의 원로들을 부려먹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로들은 그의 권력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그의 ‘명령’을 따른게 아닙니다. 그가 평소에 자기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주며 필요한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이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그를 위해 나섰던 것이지요.

 

그 백인대장이 직접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은 것은 자신이 ‘주님을 뵙기에 합당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그 ‘불합당’함이 혹여 주님께 누를 끼칠까봐, 혹시라도 주님께서 자신으로 인해 곤란한 상황을 겪으시게 될까봐 걱정되어 ‘감히’ 그분께 다가가지 못한 겁니다. 그가 예수님을 뵙기에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겉모습이 볼품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지위가 비천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기준에서 볼 때, 자신이 전능하신 주님을 만나뵐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여긴 것이지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직 세속의 때를 벗지 못하고 욕망과 집착에 물들어 살아가는 자신이 섣불리 거룩하신 주님께 다가갔다가는 큰 일이 날거라고 두려워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그 솔직함이, 자신이 주님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그 겸손함이 오히려 그가 주님을 뵙고 그분의 은총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 백인대장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말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분을 향한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데에는 참으로 인색하지요. 주님께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떼를 쓰기만 할 뿐, 내가 어떻게 해드려야 그분께서 기뻐하실지, 내가 어떤 것들을 조심하고 또 어떤 것들을 실천해야 그분 뜻에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맡긴 물건 찾아가듯 그분께 내가 원하는 은총을 당연하다는듯이 요구하곤 하지요. 그에 비해 백인대장이 예수님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려깊음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괜히 먼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실 것 없다’고, 그저 자기의 처지를 생각해주시고 권위가 담긴 ‘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겁니다.

 

그 겸손한 백인대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진실되고 솔직한 고백이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려줍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내 지붕’ 아래에 꼼짝 않고 버티고 서서 주님보고 ‘이리 오시라’고 재촉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주님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그분 지붕 아래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런 우리의 겸손한 믿음과 순명을 보시고,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만하게 채워주실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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