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9.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루카 7,16)
오늘 <복음>인 ‘나인의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이야기’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루가 8,40-56)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이야기’(요한 11,17-44)와 함께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죽은 이를 살리신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1열왕 17,17-24)라든지,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2열왕 4,32-37),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린 이야기(사도 9,36-43)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그들이 하느님께 간청해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직접 “일어나라”는 한 마디의 말씀으로 죽은 이를 손수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누구의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아들을 잃은 과부에 대한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서 베풀어집니다.
이는 당신 자신이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이심, 곧 메시아임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당신의 큰 자비를 드러내줍니다. 곧 율법에 따르면, 시체에 손을 대는 것은 부정을 타는 행위이지만, 율법을 너머서는 그 자비의 힘으로 죽은 젊은이를 일으키셨습니다.
오늘,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보고 싶은 것은 이 광경을 ‘목격한 자들의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반응은 바로 지금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들 자신의 반응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루카 7,16)
우리는 여기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일”이 어떻게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는지? 보고자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체험에서 오는 “두려움”은 성서 안에서 두 가지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에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히자 베드로가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루카 5,8)라고 했던 것처럼, 무서움과 공포, 거부와 배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요, <또 다른 한 가지>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하느님께 대한 찬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단지 무서움이나 공포의 감정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내 감사와 찬양, 사랑과 예배를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의 체험은 하느님의 거룩함과 전능함 그리고 위대하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왜소함과 무능함 그리고 죄를 발견하면서 오게 되는 회개와, 바로 그분이 자신의 주님임을 깨닫고 믿게 되면서 감사와 찬양, 예배와 사랑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두려움은 사랑이 머물 자리를 준비합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사랑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두려움은 사랑이 들어오게 하는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이끌고 들어갈 수 있도록 두려움이 그대 마음 안에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지혜 1,28)”(요한서간 강해 9,4)
이처럼, “두려움”이라는 바늘을 통해, “사랑”이라는 실이 꿰매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베네딕도는 <규칙서>에서 다른 어떤 것 때문에가 아닌, “하느님을 사랑으로 두려워할 것”(규칙서 72,9)을 말합니다. 곧 “두려움”과 “사랑”이 동일한 것으로 다루어집니다. 또한 그는 <규칙서>의 머리말에서 <시편> 32편 12절을 인용하여, 말합니다. “아이들아 와서 듣거라. 하느님 두려워함을 가르쳐 주겠노라”(머리말 12)
오늘, 우리도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배우고,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루카 7,16)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젊은이야, 일어나라.”(루카 7,14)
주님!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이를 일으켜 세우시듯,
당신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에 누워 잠들어 있는
저를 일으켜 세우소서!
죽음의 길 벗어나 생명의 길 걷게 하소서!
쪼개어 나누며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상처도 축복이 되게 하시고, 아픔도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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