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삶의 중심인 예수님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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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0-01 | 조회수312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사랑하라, 배우라, 실천하라-
“극한기후에 과수 몸살... 품종, 재배, 보험 종합처방 시급” 금주 농민신문 일면 톱기사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수확의 기쁨을 맛봐야 할 과수농가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합니다. 봄철 저온피해에 여름철 폭염, 집중호우가 9월까지 반복되면서 사과, 복숭아, 포도, 대추 등 과수에 병충해가 확산되어 수확할 게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톱기사 제목을 삶에 빗대어, “극한상황에 사람들 몸살...삶의 종합대책 시급”이라 말마디를 바꿔보니 그대로 통하는 듯 싶습니다. 과수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 역시 극심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여파로 너무 피폐해져있기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참으로 깨어 전반적으로 삶을 추슬러야할 때입니다. 몇가지 예화를 나눕니다.
예전 피정지도중 미사를 드리기에 앞서 제의방에서 인사하고 나오려는 순간, 인사할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어, 잠시 당황했던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인사할 “삶의 중심”인 십자가의 예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난감했던 순간도 잊지 못합니다. 신자 자매가 믿지 않는 분과 갑자기 내방했고 신자분은 말씀처방전을 써드렸는데 믿지 않는 자매는 성서를 아무리 찾아도 써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니 성경 말씀 전체가 무의미하겠기 때문입니다. 결국 써드리기는 했지만 별 느낌이 없는 듯 했습니다.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라 고백하는 신자들에게 이런 불신자들과의 교류도 때로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10월1일은 주일이기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873-1897) 기념미사”는 봉헌하지 않습니다만 성녀의 임종어가 문득 생각납니다. 혼란하고 피폐한 삶을 추스르는데 임종어를 묵상함도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임종어에 성녀의 삶전체가 요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897년 9월 30일 저녁, 만24세 꽃다운 나이에 병환으로 선종을 맞이한 성녀의 임종어입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주님 사랑으로 일관한 평생 아름답고 거룩한 삶이었음을 요약하는 임종어입니다. 작년에 선종하신 교황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임종어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임종어는 무엇이겠는지요? 얼마전 9월8일 선종한 개신교 종교학자 길희성 석학(碩學)의 임종순간의 일화도 소개합니다.
-‘이진권 목사님이 병상에 누워있는 선생님의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선생님은 갑자기 두팔을 들어 허공을 몇 번 가리키시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그중에 한마디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사랑하셨던 에크하르트는 “우리 평생의 기도가 ‘감사합니다.’ 오직 하나라면 그것으로 족하다.”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 말을 마지막 기도처럼 남기고 지난 8일 신비의 세계로 돌아가셨다.’-
아쉬운 것은 “주님, 감사합니다!”이면 좋았겠는데 “주님”이 없었다는 것이며, 우리로 하면 “신비의 세계”가 아닌 “주님곁”에로 돌아가셨다라고 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주어는 참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선종시 이런 겸손하고 진실한 임종어로 주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표현하며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니 평소 한결같이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배우며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비로소 참삶에 참죽음이 선종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복된 선종을 맞이하기 위한 삶에 대한 구체적 처방입니다.
첫째, 사랑하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이웃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은 함께 갑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저절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니 늘 자나깨나 일편단심 온맘과 온맘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절로 나오는 늘 바쳐도 늘 감미로운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당신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오늘 복음의 두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 했다가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나간 맏아들이 실제 아버지를 사랑했음을 봅니다. 맏아들이 상징하는바 세리와 창녀들이요 이들이 실상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믿었던 이들임을 봅니다. 어제 저녁 성무일도시 시편 16장에 표현된 주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의 내면의 예수님 사랑과 신뢰가, 또 성녀 소화데레사와 많은 거룩한 신비가들이 이랬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내게 주신 주님을 기리오니, 밤에도 이 마음이 나를 일깨우나이다. 주님을 언제나 내 앞에 모시오니, 내 오른편에 계시옵기 흔들리지 않으오리다. 그러기에 내 마음 즐겁고 영혼은 봄놀고 육신마저 편안히 쉬오리니, 내 영혼을 명부에다 버리지 않으시리이다.”
둘째, 배우라! 우리의 영원히 배워야 할 참 스승은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평생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평생 주님 사랑의 학교에서 재학중인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배워도 영원히 초보자라는 자각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더욱 분투의 노력을 하게 합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 필리피서 그리스도 비움 찬가에 우리가 배워야 할 그리스도 예수님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감동적 가르침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이어지는 필리피서 2장6-11절 까지는 우리 수도자들이 매주 저녁기도 제1저녁기도(토요일)시 바치는 그리스도 찬미가입니다. 우리가 평생 배워야할 주님의 겸손과 순종의 사랑은 끝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보다 주님 사랑을 잘 드러내는 찬가도 없을 것입니다. 참 사랑은 끝없이 비워가는 겸손한 사랑임을 배웁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사람들과 같아지셨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극치, 하느님 비움의 극치, 하느님 겸손의 극치인 그리스도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평생 모시고 배워야 할 스승입니다. 아마도 하느님의 자기비움의 사랑의 극치를 체험한 분은 십자가의 예수님에 이어 피에타의 성모님일 것입니다.
셋째, 실천하라! 우리가 오매불망(寤寐不忘) 늘 그리워하고 사랑하여 우선적으로 선택할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이요 이런 예수님 말씀의 실천을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정말 말로만의 공허한 믿음이나 사랑이 아니라 실천으로 입증되는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속과 겉이 같은 언행일치의 믿음이요 사랑이니 이의 결정적 표현이 순교의 믿음, 순교의 사랑입니다. 어제 저녁 성무일도시 오늘 복음을 요약한 마리아의 노래 후렴이 생각납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가게 되리라.”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복음의 맏아들이요 맏아들이 상징하는 바, 세리와 창녀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폭탄선언이 참 좋은 충격요법입니다. 당대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뿐 아니라 오늘의 기득권을 지닌 교회 지도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이 너희에게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아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부터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의 삶입니다. 오늘은 군인주일입니다. 우리는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군인, 주님의 전사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에 주님의 영적 전사인 우리들에게 늘 깨어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의 삶은 필수입니다. 과거 아무리 잘 살았어도, 영적전투를 잘 했어도 지금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과거 의인이었느냐 악인이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행태가 중요합니다.
제1독서 에제키엘서 말씀대로 의인이 정의를 버리고 변절하여 불의를 저지르면 죽을 것이요, 악인이라도 참으로 회개하여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입니다.그러니 늘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삶의 중심인 예수님 안에서 회개하여 초발심의 자세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배우고,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 파 주님의 믿음과 사랑의 전사로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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