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바오로가 되기 싫어하는 사울이라고나 할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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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10-01 | 조회수24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서울에 근무하는 검찰청 동생에게 메시지를 오랜만에 보냈더니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믿는 것에 의해서 사후가 달라지는게 아니고 현재의 행위, 말, 생각으로 미래가 달라져요~ 난 형이 행복하기를 바래요” 결혼한다고 재수씨를 세례를 받게 하고 결혼을 하였는데 그 때의 열절한 믿음 생활을 보며 ‘그래 잘되거라.’ 했었는데 직장에서 수많은 것들과 싸우더니 이런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었다. ‘동생은 지금 하는 말이 믿음의 기초라는 것을 모르나 보다.’ 하고서는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검사직무대리로서 매일 범죄와의 전쟁을 하는 직업을 가졌으니 생각도 변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을 하였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동생의 말을 들어보며 ‘그러면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의 것과 비교하며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 열매는 어찌 되는가 하는 말이 나왔다. 동생은 그 열매란 “악인악과 선인선과라 말을 하며 이타적 도덕적 욕심없음이 기준이라며 말을 한다.” 우리는 도덕적 인간이 되고자 하거나 욕심 없는 인간이 되고자 믿는 것은 아닌데...... ‘이는 시간적 사유와 세계의 여타 나라의 풍습과 행동 양상이 서로 다르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과오가 있다. 믿음은 변하지 않는 부동적이지만 도덕이니 하는 것들은 그 시대와 환경 등에 의해서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즉 보편적인 생각이 아니다.
바오로가 되기 싫어하는 사울이라고나 할까? 부디 그 좋은 머리로 하느님을 노래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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