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따름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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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0-04 | 조회수409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파스카 예수님 중심의 삶-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이자, 요셉 수도원에 1988년 7월11일 부임하여 그해로부터 2023년 올해로 36번째 맞이하는 제 영명축일입니다. 성인 축일을 맞이할 때 마다 확인하는 생몰연대와 더불어 제 나이를 비교해 봅니다. 성인마다 생몰연대는 다 다릅니다. 산 햇수의 “삶의 양”이 아닌 얼마나 치열하게 사랑하며 주님 중심의 삶을 살았느냐의 “삶의 질”이 성덕의 기준임을 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몰연대를 보니 만44세를 사셨고 현재 저는 성인보다 30세를 더 살고 있습니다.
제가 성인들이나 위인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을 때, 또 모든 이들의 삶을 통해 확인해 보는 두 요소가 있습니다. 이들의 삶의 스토리(이야기)와 콘텐츠(내용)입니다. 사람마다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는 다 다르지만 시종여일 주님 중심의 삶에 충실했을 때 그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도 참으로 풍요롭고 아름답습니다. 파스카 예수님 중심의 삶에 따름의 여정에 충실했을 때 참 아름답고 풍요로운 생애라는 것이며, 바로 오늘 기념하는 성 프란치스코가 이의 참 좋은 모범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는 참 풍요롭고 흥미진진하여 끊임없는 영감의 샘이 됩니다. 제가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집을 옮길 때 맨처음으로 알았던 성인이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성인이요, 기후위기로 공동의 집인 지구가 시시각각 위협받고 있는 작금의 시대, 최고로 각광을 받고 있는 성인이 바로 “오 아름다워라”로 시작하는 태양의 찬가의 주인공인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때로 저는 유쾌한 상상도 해보곤 합니다. 내 죽었을 때 장례미사 입당 성가는 “오 감미로워라”로 시작되는 ‘태양의 노래’로, 강론은 제 좌우명 기도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로, 그리고 퇴장 성가는 “오 아름다워라”로 시작되는 402장 성가를 부탁해두고 싶다는 유쾌한 상상입니다. 성인에 관한 몇가지 일화도 생각납니다.
1.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듯 성 프란치스코를 사랑했고 그가 남긴 말마디입니다. “백년마다 한번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다.”
2.그리스의 유명한 작가인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성자 프란치스코 전기 서문에 소개되는 내용입니다. “나에게 있어 성 프란치코는 사람의 본분을 다한 인간의 표본이며, 시련 또한 평화로운 투쟁으로 이겨낸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의무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것은 윤리나 진리 또는 아름다움보다도 더 지고한 차원의 것, 곧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이 맡기신 물질을 갈고 닦아 영혼으로 승화시키라는 본질의 의무일 것이다.”
3.얼마나 잘 준비된 죽음인지 깨닫게하는 성 프란치스코가 죽기전에 남긴 유언입니다. “내 형제 죽음이여, 어서 오라.”
4.성인이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시편141장입니다. “주여, 이 몸 당신께 부르짖사오니, 어서 빨리 구하러 오시옵소서 내 항상 당신께 부르짖을 때마다, 이 목소리 귀여겨 들어 주소서.”
5. 제 좋아하는 짧은 좌우명시 "산과 강"을 되뇌일 때마다 생각나는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끊임없이, 한결같이 임기다리는 정주의 산,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끊임없이, 한결같이 임향해 맑게 흐르는 강, 성 프란치스코”- 밖으로는 ‘정주의 산’ 성 베네딕도를, 안으로는 ‘맑게 흐르는 강’ 성 프란치스코를 사는 것은 우리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수도자들의 소망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제부터 계속이어지는 루가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파스카의 신비가 이뤄질 최종 목적지입니다. 새삼 우리 삶의 여정은 이런 예수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파스카 예수님을 한결같이 충실히 따랐던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통해 우리는 세가지 진리를 배웁니다.
첫째, “주님을 사랑하라!” 프란치스코 성인뿐 아니라 모든 성인들로부터 배우는 진리가 주님을 향한 한결같은 열렬한 사랑입니다. 이들의 삶전체가, 모든 수행이 일편단심 주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느혜미아도 이에 해당됩니다. 느혜미아는 “주님께서 위로하신다”란 뜻이라 하는데 성인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성인들을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느혜미아의 주님 사랑은 예루살렘 재건을 통해 드러납니다. 페르시아 임금과 주고받은 대화입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임금님께서 좋으시다면, 그리고 이 종을 곱게 보아 주신다면, 저를 유다로, 제 조상들의 묘지가 있는 도성으로 보내 주셔서, 그 도성을 다시 세우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느혜미아의 하느님 사랑은 예루살렘 도성의 재건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역시 주님을 사랑했던 성 프란치코의 사랑은 가난에 대한 사랑에서 정점에 도달합니다. “나는 가난이라는 여인과 결혼할 것”이라는 고백대로 가난은 성인의 본질적 행로였으며, 성인을 따르는 공동체 형제들에게도 가난한 삶은 필수였습니다.
둘째, 집착하지 마라!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집착에서의 해방이요 자유로운 이탈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는 진리입니다. 물론 우리는 복음의 세 지원자들이 어떻게 응답했는지는 모르겠고 결국 응답은 우리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곳조차 없다.”- 세상 어느 장소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오직 주님 안에 정주처, 안식처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삶의 중심인 주님 안에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라는 말씀입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일체의 사람들로부터, 인간사에서 초연하라는, 사람들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장소에 이어 사람으로부터의 이탈입니다. 이래야 무관심이 아닌 애착이 없는 순수한 아가페 사랑이 가능하겠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과거로부터의 집착에서 결별을 뜻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얼마나 긴박하고 절박한 절대적 요구인지 드러납니다. 장소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과거로부터 이탈하여 애오로지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을 따르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셋째, 이웃을 사랑하라! 참으로 집착에서 자유로울 때 이웃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요 형제애의 발로입니다. 주님을 한결같이 열렬히 사랑하며, 세상 모두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자유로, 이웃에 대해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이중계명은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사랑의 삼중계명에 이름을 봅니다.
하느님 사랑, 사람 사랑에 이어 자연사랑의 지구사랑이 추가됩니다. 사람 사랑은 “평화의 기도”에서 절정을 이루며, 자연사랑은 “태양의 찬가”에서 절정을 이루니 예수님은 자신을 완벽하게 보완해 준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고맙고 흡족하시겠는지요! 바로 이런 예수님과 성 프란치스코의 훌륭한 추종자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교황님의 기후위기에 직면한 지구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요즘 각광받고 회자되는 생태적 회개도 성 프란치스코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한 프란치스코 교황님 덕분입니다. 여기에다 요즘 회자되는 생태민주주의에 대해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자연 속에 겸손하게 깃들어 살아야 된다는 것, 자연을 어머니 품처럼 느끼면서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살아야 된다는 차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풀뿌리의 겸손함(humilitas)이 필요해요. 그 풀뿌리를 지탱해주는 흙(humus)이 인간(homo)과 어원이 같아요. 그러니까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한 자세로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요 이런 뜻에서 생태민주주의입니다.”
아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인, 오늘날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에 성 프란치스코의 생태영성, 생태민주주의, 생태적 회개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듯 이웃 형제를, 이웃 자연과 피조물 형제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삼중계명의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주님을 충실히 잘 따르도록 도와 주십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 성 베네딕도처럼, 안으로는 맑게 흐르는 강 성 프란치스코처럼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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