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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움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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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09 조회수326 추천수6 반대(0) 신고

 

-주님은 최고의 스승이시다-

 

 

세계가 참 어수선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틴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10월7일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틴인들은 최소 198명이 사망하고 1610명이 다쳤으며, 앞서 팔레스틴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들 역시 150명이 사망하고 1000명이 부상했으며 양측의 전쟁은 계속중입니다. 교황님은 양측에 평화를 위하여 기도를 청했고 담화중 한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모든 전쟁은 패배다!(Every war is a defeat!)”

 

전쟁은 무조건 인재요 악입니다. 그 자체로 이긴자든 진자든 결국은 패배의 어리석음임을 배웁니다. 그런가하며 10월8일 아프카니스탄에서는 강력한 지진으로 2천명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자가 인재라면 후자는 천재입니다. 새삼 이렇게 살아있음이 순전히 은총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기도하며 깨어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삶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배워야 할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삶자체가 스승입니다. 저에겐 공동체가, 주님이 최고의 스승입니다. 깨어 겸손히 잘 보고 또 경청하며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래서 잘 보고 잘 듣고 배우기 위해 침묵입니다. 오늘은 제577돌을 맞이하는 한글날입니다. 1446년 9월29일 훈민정음이 반포됨을 기념하는, 또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리고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이자 법정 공휴일입니다. 세종실록을 통해 성군이라 일컫는 세종대왕의 백성 사랑을 배웁니다. 저는 전주 이씨로 세종대왕의 17남인 영해군파에 속합니다.

 

“우리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문자가 서로 유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끝내 제 생각을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이를 가엾이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쉽게 배워서 일용에 쓰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민족의 스승인 세종대왕에 대한 역사학자의 평가입니다.

 

“세종의 최대업적인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의 사상과 학문의 종합판이자 결정판이다. 여기에는 홍익정신, 애민사상, 통합적 학문관, 전통문화의 존중, 중국문화의 수용등이 절묘하게 융합되어 있다. 그래서 민족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자가 되었다.”

 

이 역사학자의 세종과 정조에 대한 비교도 유익합니다.

 

“두분은 너무 닮았다. 무엇보다 책벌레로 불릴만큼 무서운 독서력이 똑같다. 천재적인 두뇌도 서로 같다. 팔방미인처럼 박식하고 다재다능한 것도 비슷하다. 백성 사랑도, 정사에 부지런함도 같고, 과로 때문에 장수하지 못한 것도 서로 닮았다. 세종이 54세요, 정조가 49세로 생애를 마감했다.” 

 

하느님께서 우리 한민족에게 주신 참 좋은 선물이 세종대왕이요 한글임을 깨닫고 배웁니다.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시절 간혹 불렀던 한글날 노래 가사가 아름다워 찾아 1,2절 인용합니다. 곡도 듣고 불러보니 흥겹고 느낌이 성가같습니다. 유명한 최현배 한글학자의 나라 사랑, 한글 사랑이 가득담긴 아름다운 가사입니다.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긴역사 오랜전통 지녀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이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자랑 문화의 터전

 이글로 이나라의 힘을 기르자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자는

 그속에 모든이치 갖추어있고

 누구나 쉬배우며 쓰기편하니

 세계의 글자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자랑 민주의근본”

 

삶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한글날을 통해서도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민족인지 새삼 참 많이 깨닫고 배웁니다. 이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마다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바치는 만세육창입니다. 

 

수도승의 두 기본자질은 하느님을 찾는 갈망과 배움에 대한 사랑을 꼽습니다.중국의 현자 공자의 논어의 핵심도 호학好學, 배움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 역시 일상의 삶을 통해, 또 오늘 미사중 복음과 독서를 통해 깊은 진리를 깨닫고 배웁니다. 새삼 우리가 배워야 할 최고의 스승은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아마도 복음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율법학자도 최고의 스승 예수님께 크게 배웠을 것입니다. 율법학자의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되받아치는 예수님의 질문에 율법학자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을 꼽습니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참 기막힌 답변입니다. 최고의 스승 예수님의 진면목이 환히 드러나는 말씀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네가 삶으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며 그때 영원한 생명의 선물도 받을 것이란 율법학자의 허점을 정확히 직격한 예수님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정담함을 드러내고 싶은 허영에 또 율법학자는 또 누가 나의 이웃인가 묻습니다. 참 좋은 스승 예수님은 귀찮게 여기지 않고 그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율법학자는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독자讀者인 우리들에게도 깊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곤경에 처한 이를 구원해 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너도 곤경중에 있는 이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이를 피해 간 사제와 레위인, 그리고 이를 돌본 자비로운 사마리아인중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물음에 율법학자는 아직도 사마리아인에 대한 무시하는 마음은 남아 있어 사마리아인 대신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앞서의 대답과 대동소이합니다. 이제 말장난 같은 질문은 그만하고 삶의 현장에 가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라 말씀하시는 주님입니다. 율법학자뿐 아니라 최고의 스승이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가르침이자 복음의 결론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우리는 또 복음에서 놀라운 사실도 배웁니다. 하느님을 잘 믿는다는 사제와 레위인이 아니라 이교인 사마리아인이 더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며 분발케 합니다. 아마 내심 율법학자도 부끄러워하며 크게 깨닫고 배웠을 것입니다. 삶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제1독서의 요나도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하기 싫어 도망치다 주님께 사로잡힙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요나는 최고의 스승인 주님으로부터 하느님의 섭리와 자신의 성소를 깊이 깨닫고 배웠을 것입니다. 

 

한번 주님께 불림 받은 자를 주님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주님을 떠나 피해갈 곳은 아무곳도 없다는 사실을 요나는 참 깊이 깨닫고 배웠을 것입니다. 다음 고백에서 요나의 주님께 승복하는 자포자기적 솔직한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이 왜 요나를 좋아하시는지 다음 요나의 매력적인 면모를 통해 깨닫습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나는 바다와 뭍을 만드신 주 하늘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오....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이 큰 폭풍이 당신들에게 들이닥친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이런 하느님의 섭리의 손길을 체험하고 배우면서 요나의 성소는 더욱 굳건해졌을 것입니다. 새삼 우리 성소 여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알게 모르게 오늘 여기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 중에도 하느님은 나를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이래서 각자 개인 삶의 성경 렉시오디비나 묵상을 강력히 권하고 싶습니다. 또 복음에서 사마리아 이교인들에게 놀랐는데 제1독서 요나서에서 역시 이방인들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질 때의 그 기도와 고백에 놀랍니다. 마음 깊이에서는 누구나 하느님을 믿는 신자임을 깨닫습니다.

 

“아, 주님! 이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킨다고 부디 저희를 멸하지는 마십시오. 주님, 당신께서는 뜻하신 대로 이일을 하셨으니, 저희에게 살인죄를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이방인들 마음속 깊이 잠재한 하느님 신앙을 불러 일으켰으니 요나의 자발적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가 참 기막힌 복음 선포였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요나가 사흘낮과 사흘밤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육지에 뱉어 내게 하시니 그대로 사흘만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예표가 된 요나입니다. 

 

삶은 배움이 여정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배움의 여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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