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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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0-16 | 조회수33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루카 11,29-32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말은 서서 잘까요? 아니면 누워서 잘까요? 대부분의 초식동물은 서서 잔다고 합니다. 그래야 포식자들로부터 도망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누워서 곤히 자버리면 공격에 더 쉽게 노출될 뿐만 아니라, 잠을 깨고 일어나서 도망치기까지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기에 그만큼 생존에 더 불리한 겁니다. 그런 이유로 야생의 말들도 자기 보호를 위해 서서 잡니다. 그런데 목장에서 키우는 말은 대부분 누워서 잔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라는 동안까지 사람이 옆에서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살펴 주기에 굳이 긴장한 상태로 있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과 주인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네 다리 뻗고 편하게 자는 겁니다. 말 그대로 ‘천하태평’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믿음을 지니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세상만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주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믿음이 부족하기에 자꾸만 걱정하고 불안에 빠집니다. 그래서 당장 제 손에 잡히는 세상의 것들을 잔뜩 움켜쥠으로써 그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보려고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그분께 의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를,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야만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표징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가져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내가 먼저 하느님을 믿어야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과 사건들 속에 숨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볼 ‘혜안’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혜안으로 봐야 보이는게 표징이지요. 그러니 우물가에서 숭늉 찾을 생각말고 먼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노력을 통해 내 믿음을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게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군중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신다는 것을 자기들이 알아볼 수 있게 ‘증거’를 대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에게 증거를 보여주신다고 그들이 생각을 바꿀까요?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듣는게 거북하고 불편하다고 두 귀를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표징을 알아보려면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하고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면 두 귀를 활짝 열고 예수님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그러려고 하질 않으니 눈앞에 표징들이 차고 넘쳐도 식별하지 못하는게 당연하지요.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남방 여왕’과 ‘니네베 사람들’의 예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남방 여왕이 그 먼 여행길도 마다하지 않고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했기에, 니네베 사람들이 강대국 국민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점령국 예언자가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고 회개했기에 그들이 구원받아 심판 때에 하느님 뜻에 따라 죄인들을 단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하느님 사랑의 표징을 알아보고 싶다면 먼저 그분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요나는 그 존재 자체로 하느님께서 니네베 사람들에게 보내신 당신 사랑과 자비의 표징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굳이 예언자를 보내실 것 없이 죄악이 만연한 그 도시를 그 죄값에 따라 심판하셨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신 하느님은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셨고, 니네베 사람들이 즉각적이고 진심어린 회개로 하느님 말씀에 응답함으로써, 그 말씀을 전한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는 표징이 된 겁니다. 그런 점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지요.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불의와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멸망시키셨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외아들을 보내시어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셨고, 그 덕에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특별히 무엇을 하시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시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 삶 전체가 하느님 사랑의 표징으로 가득 차 있지요.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 뜻에 집중하며 바라볼 때 그 표징들이 갖는 의미를 알아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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