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6.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2).
오늘 <복음>은 앞 장면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어떤 사람들은 놀라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악한 세대”라는 말은 <마태오복음>에 비추어 보면, 단지 마음이나 행실이 악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마태 17,17)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그들의 완악함과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루카 11,16 참조).
사실, 이방인인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했건만, 막상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 달려왔건만, 막상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지역에서는 이미 그들 가운데 와 계신 지혜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분을 시험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말하실 뿐입니다. 곧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고 외치는 회개의 때가 왔다는 것과 그가 바다에 빠져 고래 배속에서 사흘째 날에 다시 밖으로 나온 일, 곧 사람의 아들이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표징으로 말씀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2).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1)
사실, 요나와 솔로몬은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소생했을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솔로몬의 번영과 지혜는 사라질지라도, 예수님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곧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표징을 볼 줄 아는 눈, 곧 ‘믿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사실 믿음으로 보면, 모두가 신비요 사랑이요 자비요 기적일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활동이요 현존일 것입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을 보는 눈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는 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언가 불가사의한 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크나 큰 사랑과 그 자비를 선포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루카 11,29)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오늘도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믿음으로 보는 눈을 주시어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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