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4.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루카 12,35)
가을이 저물어 갑니다. 오늘 <복음>은 종말의 준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루카 12,35)
여기에서, 깨어있음의 표시는 두 가지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것’과 ‘등불을 켜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파스카 음식에 대해 하신 말씀, 곧 “그것을 먹을 때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탈출 12,11)는 말씀을 떠올려줍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있어라”는 것은 육체노동을 하는 이들이 허리에 띠를 매듯이 일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경계하고 있는 것(알렉산드리아의 치릴루스), 혹은 사나운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것(아우구스티누스)을 말해줍니다. 곧 임을 맞아들여 시중 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도둑이 몇 시에 올지”(루카 12,39) 모르듯, “생각하지도 않을 때 사람의 아들이 올 것”(루카 12,40)이기 때문입니다.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는 것은 마음과 지성에 등불을 밝히고 기운차게 깨어 있으라는 것(알렉산드리아의 치릴루스), 혹은 ‘선의 행실’로 등불을 밝힘(아우구스티누스)을 의미합니다. 곧 임이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혀두고, “빛 속에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빛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 빛 속에 있는 것이 “깨어있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시편>에서 “말씀은 발의 등불”(시 119,105)이라 말하고 있듯, ‘말씀의 등불’을 밝히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를 통해 “깨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루카 12,37)
여기서 ‘깨어있음’은 단지 잠들어 있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잠들지 않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돌아오면 문을 “곧바로 열어 주려고” 뜨거운 열망으로 기다리는 것, 곧 사랑의 열망으로 임을 그리워하는 것, 희망하는 것이 깨어있음입니다.
정리해 보면, ‘깨어있음’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주인이 오기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이미 축복입니다. 그 안에 이미 임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기다리는 이 안에서 임이 이미 빛을 밝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깨어 기다리는 이는 이미 빛 속에 있는 이요, 이미 등불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깨어있을 수 있음”은 이미 품고 있는 임으로 말미암아 것, 곧 깨어 계시는 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편> 말씀처럼 “당신 빛으로 당신을 보는”(시 36,10 참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주인은 참으로 묘하신 분이십니다. 주인이 돌아오면 종이 주인의 시중을 드는 일이 당연하거늘, 오히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인님은 그러신 분이십니다.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복된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이 미사를 통해, 몸소 당신 몸과 피로 성찬을 차려주시고 우리의 양식이 되어 섬기시니, 그저 주님 사랑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루카 12,35)
주님!
허리에 띠를 매고 임을 반겨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시중 들 수 있게 등불을 밝히고 빛 속에 있게 하소서!
빛 속에 있는 일도, 깨어있는 일도.
깨어날 수 있음도, 깨어있을 수 있음도,
오직 깨어 계시는 임께서 함께 계신 까닭이오니, 주님 찬미받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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