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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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0-25 | 조회수31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행복하여라, 책임을 다하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주소서.”(시편17,8)
어제 강론은 흡사 깨어 있음 예찬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강론중 몇가지를 후에 추가했고 만족했습니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생명입니다. 깨어 있음은 위로입니다. 깨어 있음은 치유입니다. 깨어 있음은 주님의 현존입니다.” 후에 추가하고 보니 새삼 깨어 있음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깨어 있음의 영적훈련과 습관이 참 중요하다 생각되었습니다.
어제는 매월 갖는 예수성심자매회 월례 모임이 있었습니다. 2005년 태동되어 시작됐으니 무려 18년 역사를 지닌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요셉 수도원을 사랑하는 자매들입니다. 어제 7명의 참석자매들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웃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고 평화로워 보기 좋았습니다. 10년을 훌쩍 넘으니 가을 인생에 접어든 모습들이 노화老化보다는 성화聖化되어가는, 저물어가기보다는 여물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두가 자연스럽고 성화되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세월이 흘러도 모두 변함없는 모습입니다. 신부님도, 저희들도...”
한 자매와 주고받은 메시지입니다. 한분한분이 모두 한결같이, 변함없이 가정공동체라는 자기 삶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 온 충실하고 슬기로운 자매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다음 대목과 일치합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어제 “깨어 있어라”는 내용의 복음은 모든 제자에게 내리는 권고라면 오늘은 관리자로서 형제자매들을 책임진 이들에게 내리는 권고입니다. 그러니 각자 삶의 자리에서 이런저런 책임을 진 모두에게 해당됨을 봅니다. 막연한 믿음이, 사랑이 아닙니다. 참 믿음은, 참 사랑은 그 책임을 다할 때 입증됩니다.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 책임을 다하는 사랑이 참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참으로 충실하고 슬기로운 주님의 종들이요, 바로 예수성심자매회 자매들 모두가 그러합니다. 일년사계로 하면 가을철에 속한 연세들로 잘 익어가는 신망애信望愛의 열매들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오늘 사진 나눕니다! 편히 쉬세요! 사랑하는 수산나 자매님! 오늘 자매님 참석 못하신 것 길이 잊지 못할 것입니다.” “멋진 신부님, 사진으로라도 뵈니 평화가 오네요. 신부님 사랑합니다.”
제가 감동하고 놀라워하고 고마워하는 점은 무려 15년 이상을 공동체의 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15년 이상 매월 모임에 한번도 결석한 적이 없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병원에 입원중이라 어제 처음 모임에 참석치 못한 것입니다. 자매님은 물론 많은 분들이 10년을 넘어서니 내적 아름다움이 빛을 발합니다. 한결같이 깨어 제 삶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온 삶이기에 이런 맑고 향기롭고 기품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요즘 배밭사이를 산책할 때의 느낌도 참 각별합니다. 지난 10월19일로 배밭의 배수확이 완료되었습니다. 배나무들 역시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처럼 묵묵히 제 삶의 자리에서 제 책임을 다하였기에 풍성한 배열매들을 낼 수 있었습니다. 큰 배열매들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하느님과 사람들과 배나무의 공동책임을 다한 노고의 결실이, 기도와 일의 결정체가 배열매들입니다. 말 그대로 사랑의 기적,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그러니 수확후의 배밭은 “텅 빈 충만의 사랑”입니다. 배열매들 수확후의 배밭을 산책할 때는 참 흐뭇하고 넉넉하고 편안하며 행복한 느낌입니다. 배밭의 배나무들처럼 제 삶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이런 열매 풍성했던 노년의 가을 인생이라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겠는지요! 말그대로 “텅 빈 충만의 사랑이요 행복이요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만일 흉작으로 인해 수확이 없는 가을 배밭같은 가을 인생이라면 그 인생 “텅 빈 공허와 허무”와 같아 참 쓸쓸하고 외롭고 춥게 느껴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 전반부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과는 대조적인 후반부의 불충실하고 어리석은 종의 경우가 우리에게는 반면교사가 됩니다. 깨어 있지 못하고 참으로 태만하고 무책임했던 종이었고 이런 불충실한 종에 대한 주인의 책임추궁이 참 단호합니다. 주인 탓이 아닌 스스로 태만과 방심,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생활로 불행을 자초한 어리석은 종입니다. 복음의 결론 같은 말씀이 마지막까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함을 배웁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요구되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끝까지, 한결같이 많이 받은 만큼 제 삶의 자리에서 분투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제1독서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주님의 순종의 종, 의로운 종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순종의 종이 되었고,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순종의 종, 의로움의 종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답게, 또 주님의 순종의 종, 의로움의 종답게 살게 하십니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위에 있나니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제 그들을 살게 하시도다.”(시편33,18-19).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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