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닮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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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0-30 | 조회수310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로운 삶-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시편42,1)
어제 강론시 인용했지만 저에게 가벼운 충격이자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무려 강론에 사랑이란 단어가 112회나 사용되었다는 것이 한편 부끄러웠고, 사랑이 빠진 인생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하는 깨달음이 깊이 각인된 날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판단의 잣대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대하니 저절로 참 많이 나눴던 사랑의 고백, 예닮기도를 바치고 싶습니다. 이런 사랑의 고백기도는 늘 반복하여 바쳐도 늘 새롭고 좋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2018.10.16.
벌써 5년째 참 많이 나눴던 예닮기도 전문입니다. 명칭도 감사기도에서 행복기도로 이어 예닮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이런 사랑의 예수님의 진면목은 오늘 복음에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등굽은 여자를 치유해주시는 장면에서 회당장의 첫눈에 들어온 것은 율법의 잣대 였지만, 예수님께는 사랑의 잣대였습니다.
열여덟해 병마에 시달리던 등굽은 여자가 상징하는 바, 온갖 세상 짐들 무게에 짓눌리며 살아가는 모든 불쌍하고 가련한, 참으로 해방과 자유가, 안식이 필요한 민초들이요 바로 이것이 안식일의 참된 취지이겠습니다. 이미 루카복음 앞부분에서 공생애가 시작될 때 선포된 주님의 사명이 실현되기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나 이제나 계속되는 부자유하고 무지한 인간의 내적 현실이요 예수님이 아니고는 누가 우리를 참으로 해방과 자유의 길로 이끌수 있겠는지요! 등굽은 병마에 시달리던 여자가 상징하는 바 우리 약한 인간 모두들입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하시고 그 여자에 손을 얹으시자 그 여자는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하니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장면인지요! 그대로 부활의 기쁨에 주님을 찬양하는 치유받은 여인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온갖 근심과 걱정, 두려움과 불안으로 마음의 등 굽은 우리를 똑바로 일으켜 주십니다.
여전히 안식일법의 잣대에 사로잡힌, 안식일법의 참된 취지를 망각한 회당장에 대한 주님의 질책은 오늘날의 법지상주의자들에 대한 회개의 촉구이기도 합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풀어 물을 먹이는 실례를 예시하면서 회당장의 위선의 무지를 꾸짖습니다.
“위선자들아,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들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안식일법 너머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의 절박한 현실을 깊이 통찰한 연민 가득한 주님의 해방과 치유의 활동입니다. 안식일법의 근본취지도 이런 모두의 해방과 자유, 안식에 있는데 회당장은 이를 까맣게 잊었던 것입니다. 적대자들은 망신을 당했고 마음이 순수한 민초들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니 새삼 민심이 천심임을 입증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세 스타일- 친밀함, 연민, 부드러움-이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을 잘 보완하는 제1독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고맙습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으로 자유롭게 살게 하는 성령의 은총입니다. 성령은 사랑입니다. 파스카 예수님의 치유활동은 성령을 통해 오늘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공동상속자인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공동상속자’ 얼마나 영예스러운 우리의 신원인지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과 깊어가는 일치와 더불어 날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 바라는 너희가 모두, 굳세게 굳세게 마음들을 가져라."(시편31,25).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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