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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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0-31 | 조회수210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루카 13,18-2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둘 다 당시 이스라엘 가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흔하고 일반적인 식재료이지요. 이 둘은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둘째, 너무 흔해서 귀한 취급을 받지 못하며 셋째, 자기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고, 넷째, 그것이 온전히 성장하면 다른 존재에게 유익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 겨자씨는 흙 안에서, 누룩은 밀가루 반죽 안에서 열과 수분과 양분을 만나 변화됩니다. 겨자씨는 죽어서 싹이 트면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까지 깃들이는 안정적인 거처가 되고, 누룩은 반죽을 부풀게 하여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빵이 되게 하지요. 결국 예수님이 이 두 가지 재료를 ‘하느님 나라’에 비유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이들의 공동체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그런 모습으로 살라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날개 아래로 부르신 것임을 강조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각각의 재료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먼저 ‘겨자씨’는 유다 문학에서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음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상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정원’에 심으면 아주 큰 나무가 된다고 하시지요.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을 잘 준비되고 정돈된 우리 마음이라는 정원에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든든한 안식처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잘 심고 가꾸어 큰 나무로 키워낼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게 크고 튼튼한 나무를 달라고 떼를 쓰는 겁니다. 그런 우리 모습을 보시면 하느님은 참 마음이 답답하시겠지요.
다음으로 ‘누룩’을 살펴봅니다. 누룩은 우리 삶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키는 말씀의 ‘위력’을 상징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누룩이 반드시 밀가루 반죽 ‘속’에 골고루 잘 섞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느님 말씀도 마찬가지지요.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려면 “말씀 따로 삶 따로”인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 삶 한가운데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럴 때 말씀이 나라는 존재를, 내 삶을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모습’이란 나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그 유익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러라고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말씀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우리를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키듯, 우리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겁니다.
겨자씨가 아무리 작아도 거기에 큰 나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심으면 큰 나무가 되듯이, 누룩이 별 필요 없어보여도 큰 효과가 있음을 믿고 섞으면 밀가루 반죽을 크게 부풀리듯이, 하느님 말씀은 그것을 굳게 믿고 마음에 새기며 착실히 실천하는 이들을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신앙생활에서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지금 나에게 신앙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도, 의연하고 꿋꿋하게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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