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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1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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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05 조회수209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31주일 가해] 마태 23,1-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천주교 신자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전에 한 매체에서 신자들이 바라는 ‘사제상’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겸손한 사제’가 1위, ‘기도하는 사제’가 2위, ‘강론 잘 하는 사제’가 3위에 뽑혔답니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제의 입장에서는 강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시하는게 보통인데, 신자들이 사제에게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모습은 겸손이나 기도처럼 삶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실천의 덕목이었던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똑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는가에 따라 듣는 이들에게 주는 울림과 감동이 다릅니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시는 말씀의 내용 자체가 특별하다거나 감동적이거나 하진 않지요.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교황님의 말씀에 감명을 받고 마음이 움직이는건 그분의 삶 때문입니다. 청빈하고 검소한 습관,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언제든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몸에 벤 겸손함’, 예수님처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작고 약한 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는 따스함, 여러 위협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의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강건함... 교황님의 그런 모습을 잘 알기에 그분께서 하시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단순하고 담백하게 전하는 메시지가 우리 마음 속 깊이 박혀 큰 울림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 신자분들이 사제들에게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기보다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보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 그럴싸한 말보다 예수님을 닮은 성품을 보기를 원합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해야 할 소명이 사제들에게만 국한된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것인만큼,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유함과 겸손함, 원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넓은 마음, 사랑과 자비 양보와 희생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복음을 떠든다면 그분께 다가가고자 하는 이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그런 안일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사제들에게 하느님께서 전하시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너희가 말을 듣지 않고, 명심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겠다.” 사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써,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했지만, 말만 앞세우고 계명을 실천하지는 않는 나태한 모습으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길에서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고 이익을 취하기 위해 율법에도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규정들을 따로 만들어 지키도록 강요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고 자기와 친분이 있는 이들의 편을 들어주어 사람들 사이에 분란을 조장하기도 했지요. 그랬기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사제라는 직무 때문에 존중을 받고 이득을 누린만큼,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벌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런 공정과 정의의 원칙은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지위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큰 은총과 사랑을 받아 누리는만큼, 그분의 자녀답게 살지 않는다면, 매사에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제 뜻에 따라 시비를 가리는데에만 혈안이 되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나만 맞고 너는 틀렸다’라며 사람들 사이에서 분탕질을 하고 다닌다면, 그래서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들이 자신의 못된 표양에 걸려 넘어져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방해한다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한 벌로 그동안 누려왔던 좋은 것들을 모두 잃게 될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걸려 넘어진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저들은 말만 번지르르할 뿐 삶과 행동에서는 배울 점이 하나도 없다’는 냉정한 평가, ‘그러니 절대 그들을 따라하지도 닮지도 말라’며 멀찍이 거리를 두시는 차가운 태도, 만약 내가 주님으로부터 그런 대우를 받게 된다면 그 슬픔과 절망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주님을 잃게 된다면, 나의 전부이신 그분과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쉽고 편한 삶을 누리기 위해 이러저리 재고 따진 그 소소한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지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즉시 주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함에 있어 다른 이들, 특히 말씀과 교리대로 살지 않는 이들의 불성실과 나쁜 표양을 핑계 삼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의 삶이 모범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들이 입으로 떠드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자체를 “너나 잘하세요”라며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은 좋은 모범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때로는 나쁜 표양을 통해서도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과 방식을 통해 주어지는 하느님의 뜻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무시하며 배척한 대가는 고스란히 내가 감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은 ‘위선’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며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겁니다. 결국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열심한 척, 올바른 척, 선한 척 ‘쑈’를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예로 들어 우리가 조심하며 피해야 할 위선과 교만의 모습을 설명하십니다. 당시 유다교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 말씀과 뜻에 충실하다는 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 위해 커다란 ‘성구갑’을 몸에 묶고 옷자락 끝에 긴 술을 달아 질질 끌고 다녔습니다. 성구갑은 구약성경의 핵심구절(탈출 13,1-16; 신명 6,4-9; 11,13-21)을 양피지에 적어 작은 갑에 넣은 것으로 이를 넓은 천으로 잘 말아 감싼 뒤에 이마나 왼팔 윗 부분에 묶고 다녔습니다. 머리로는 늘 율법을 생각하고 왼팔이 맞닿는 심장으로 율법을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또 겉옷의 네 귀퉁이에 흰 실과 푸른 실을 꼬아서 만든 긴 술을 달고 다녔는데 그 술을 볼 때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행동을 삼가며 그것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함이었지요. 그런 행동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문제는 그들이 그런 행동을 통해 자기 신앙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정작 그런 행동을 하는 근본 이유와 정신을 소홀히 여겼다는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습을 두고 그들이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하셨던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나를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실천하는데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겸손’의 덕입니다. 이웃 형제 자매들을 대할 때 그들을 ‘사람’으로만 보지 말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영혼 안에 언제나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들을 ‘하느님’처럼 대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삶과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온유하고 겸손해집니다. 겉모습을 그럴싸해보이게 치장하는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훤히 꿰뚫어보고 계시는 속마음을 그분 뜻에 맞게 잘 가꾸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점점 변화되어 하느님 나라에서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복된 사람이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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