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성 대 레오 교황학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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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1-10 | 조회수28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성 대 레오 교황학자 기념] 루카 16,1-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복음이 가장 난해하면서 또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주인의 재산을 제 멋대로 낭비한 죄를 지은 것으로도 모자라, 제 살 길을 마련하기 위해 일종의 ‘공금 횡령’을 함으로써 주인에게 2차, 3차 피해를 입힌 ‘불의한 집사’를 그 주인이 칭찬하였다고 하니, 선과 악의 이분법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악을 단죄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권장하는 듯한 이 비유의 의미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는 ‘선’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선’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그 행동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 모두가 선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결과가 좋다고 해도 그 행동을 한 동기가 불순하거나,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와 상처를 입히거나 한다면 그런 불완전한 ‘착함’은 참된 ‘선’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상황이 좀 달라집니다. 하느님을 따르고자하는 우리의 지향이 마냥 순수하고 깨끗하기만 했던가요? 저마다 하느님으로부터 고유한 부르심을 받아 살아가지만, 신앙을 갖게 된 동기, 봉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 성소를 느끼는 상황, 소명을 받아들이는 목적 등을 엄밀히 따져보면 참으로 부족하고 인간적이며 계산적이기까지 한 부분들이 많지요. 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부족함과 약함을 탓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허물과 단점이 가득한 우리를 당신 구원사업을 위한 도구로 쓰시면서 각자의 지향을 일일히 따져묻거나 당신 지향과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릇되고 불순한 지향을 지녔더라도 당신의 섭리 안을 걷다보면 정화되고 성화될 수 있다고 믿으시고 또 그럴 자신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재산으로 자기 살 길을 마련하려 드는 집사의 꼼수를 모르지 않으면서 그의 ‘불의’를 인내하고 견디며 기다려 주는 주인의 마음이 바로 그런 하느님의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은 ‘굽은 자를 가지고도 직선을 그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즉 집사의 죄를 이용해서도 선익을 가져오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불의한 집사가 받은 ‘칭찬’이 ‘구원’과 같은 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은 격’으로, 하느님의 능력과 섭리 덕분에 나의 ‘불의’가 ‘선익’이라는 좋은 결말로 마무리되더라도 내 죄가 ‘없었던 일’이 되는건 아닌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불의한 집사’처럼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나의 악을 선으로 바꿔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그분의 선한 뜻과 올바른 지향을 마음 안에 받아들이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까지가 하느님께서 그리신 ‘큰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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