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 32 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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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11-12 | 조회수487 | 추천수4 | 반대(0) |
한국에서 휴가 중에 동창 신부님의 숙소에서 머물렀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꺼이 방을 내어준 동창 신부님이 고마웠습니다. 신부님의 성격만큼이나 방도 아주 정갈했습니다. 책상 위에는 선종사제들의 사진이 담긴 책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선종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부터 150번째 선종 사제까지의 사진이 담긴 책입니다. 신부님들의 사진 아래에는 출생 연도와 선종 연도가 있었고, 신부님들의 사목 성당이 있었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모든, 신부님들의 기록을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고, 신부님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온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침실 옆 작은 탁자 위에는 묵주가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매일 기도하였을 신부님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숙여졌습니다. 신부님의 서가에는 ‘도교와 그리스도교,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와 같은 책이 있었습니다. 동양의 사상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통해서 영적인 풍요로움을 키웠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 선조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을 따르려는 신부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의 숙소에서 편안한 잠자리를 얻은 것도 좋았지만 사랑하는 동창 신부님의 영적인 그늘에 쉬다 온 것이 더욱 좋았습니다. 손님 신부님들이 오면 가끔씩 뉴욕의 제 숙소를 내 줄 때가 있었습니다. 며칠 쉬다가 갈 수 있는 숙소는 되었겠지만 제 방이 영적인 그늘이 되어 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제 방에는 벽걸이형 시계가 있고, 그 아래에는 성당 달력이 있습니다. 매달 달력을 넘기지만 큰 의미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달력에 묵주를 걸어 놓았지만 묵주를 꺼내서 기도한 적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보내 온 책도 있고, 서점에서 주문한 책도 있지만 친구처럼 형광 팬으로 밑줄을 그으면서 마음의 양식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책상에 놓인 노트북으로 매일 강론을 준비하고, 말씀을 묵상하지만, 더 많은 시간은 검색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습니다. 동창 신부님의 숙소를 보면서 세상과의 소통 시간은 줄이고 하느님과의 소통을 더욱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의 몸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 네가 자주 찾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 네가 주로 사용하는 돈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도 의미가 있지만 신심불이(身心不二)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도 이런 글을 늘 마음에 새겼다고 합니다. “눈 덮인 길을 걸을 때면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말라. 지금 네가 걷는 그 길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혹여 누군가 저의 숙소에 머물면 영적인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합니다. 종교가 없는 가정에서 종교를 선택하려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엄격한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왕 종교를 가지려면 ‘천주교’를 믿어라!” 이 말은 천주교회가 한국사회에서 많은 신뢰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비자 교리를 하면서 예비자들에게 성당에 오게 된 이유를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분들이 선교해서 온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당에 다니는 친구들이 열심히 살고, 성당에 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진실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교가 없었을 때도, 이왕에 종교를 가지려면 천주교회를 택하겠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사제들을 비롯한, 천주교회에 다니는 신앙인들이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도 솔선수범을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하고 엄숙한 천주교회의 분위기는 분주하고, 바쁜 현대인들에게 삶의 안식과 평화를 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칼 날 위에서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넓은 방이라도 쉽게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때로 저를 믿어 주는 분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실수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저와 함께하는 분들을 끝까지 믿어 주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말과 행동은 좀 더 신중해야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용서는 영어로 ‘Forgiveness’입니다. 용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단순히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주는 것만이 용서는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재능을 나누어 주는 것,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 소중한 목숨까지 내어 주는 것이 용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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