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과 지혜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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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1-17 | 조회수379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무지에 대한 답은 주님이시다-
"네 근심 걱정을 주께 맏겨드려라 그분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리게 버려둘리 없으리라."(시편55,23)
오늘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입니다. 어제의 젤투르다 성녀와 13세기 동시대 분입니다. 24년 동안 성녀의 짧은 생애를 일별해 보니 헝가리 국왕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이보다 복잡하고 기구하고, 불쌍하고 불행하고 불우한 성인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지옥같은 절망의 시궁창에 뿌리 내린 연꽃같은 청순한 사랑과 지혜의 성녀였습니다. 말그대로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 천국을 산, 영적승리의 삶을 산 성녀였습니다.
고작 24세로 선종했지만 참으로 가난과 겸손, 깊은 사랑의 감동적인 삶을 사셨고, 빵제조업자와 빵집, 그리고 자선사업기관과 작은 형제회 재속 제3회의 수호성인으로 독일인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성녀입니다. 성녀의 영성지도 신부였던 콘라드의 증언입니다.
“이 여인만큼 관상에 깊이 젖어 들어간 이를 일찍이 본적이 없다. 수사들과 수녀들이 여러번 목격했듯이 그녀가 기도의 은밀함에서 나올 때 그 얼굴은 광채로 빛났고 그 눈에서 태양 광선과 같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느님의 빛이 마음속 어둠을 몰아냅니다. 지혜의 빛, 말씀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어제는 지혜를 사랑하자는, 지혜 예찬에 대한 강론이었습니다. ‘정주의 지혜’라 명명했듯이 정주의 사랑, 정주의 지혜입니다. 조선시대의 집중 최고는 지리산에 자리잡은 남명 조식의 산천재山天齋라 하며 이에 대한 내용을 일부 인용합니다.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뤘던 대학자였습니다.
-이상하게 지리산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리산에 가면 그냥 코가 찡해진다. 그 덩치가, 그 느림이 감격스러우며, 그 골격이 감격스럽다. 무엇보다도 싫은 내색, 좋은 내색 전혀 없이 사람을 턱 하고 안아주는 품이 감격스럽다. 그래서 지리산 근처에만 가도 마음이 푸근해지며, 사람으로 태어나 이왕이면 지리산의 품 정도는 되어야 하지 하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그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바로 남명의 집, “산속에 하늘이 담긴 집”이란 산천재가 있다. 조선시대의 집중 최고가 산천재다. 남명 조식은 하늘을 담은 산이었고, 산에 담기는 하늘이었다.’(집의 미래;임형주, 노은주 23쪽)-
저는 말을 바꾸어 한국 수도원중 최고는 불암산 정상이 가장 잘 보이는 요셉 수도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산천재란 뜻대로 “산속에 하늘이 담긴 수도원”이요 여기서 평생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은 ‘산속에 하늘을 담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이신 하느님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을 담은, 닮은 사람들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제 자작 애송시 ‘하늘과 호수’입니다. 하늘을 담은 산도 있지만 하늘을 담은 호수도 있습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요즘 몇 년동안 제가 즐겨 읽는 책들은 위인들의 평전이나 자서전입니다. 이분들의 사랑과 지혜를 배우기 위함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망설임 없이 아버지라 말 할 것’이란 분의 부모에 대한 감동적인 일화도 나누고 싶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직장 때문에 주말 부부로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내와 아이들만 있는 집에 도둑이 들어 아끼던 패물들을 모두 도둑맞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당황하며 남편에게 찾아가 소중한 패물 모두를 도둑이 가져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긋이 아내를 바라보던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합니다. 얼마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보석 가게였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맘에 드는 반지와 목걸이를 모두 사줄 테니, 도둑맞은 물건에 대하여 속상해하지 마시오. 어떠한 보석도 당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40년 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지금도 제 가슴에 새겨 있는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경계에서;김성진 187쪽)
그대로 사랑이 지혜임을 깨우쳐 주는 감동적 일화입니다. 오늘 역시 미사 독서와 복음은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임을 알려 줍니다. 좀더 분명히 하면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이며,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입니다. 오늘 제1독서 지혜서는 자연숭배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합니다. 자연의 신격화, 자연의 우상숭배야 말로 무지의 소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자는 무지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립니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에 대한 책임은 궁극으로 그 자신에 있다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이래서 지혜 사랑, 지혜 공부, 지혜 훈련입니다. 바로 이런 자연숭배자에 대한 답이 오늘 화답송 시편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한 지혜와 사랑의 시편작가입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복음은 일상의 삶에서 무지의 육적 욕망의 탐욕에 빠진 이들의 멸망에 대해 말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깨어 있는 자들과는 반대로 이들은 현세의 것들에 깊이 중독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잊고 세상 것들에 빠져 중독되어 살다보면 괴물도 되고 급기야 폐인도 되는 경우 얼마나 많은지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반복되는 역사같아 마음이 섬뜩해 집니다. 물과 불의 심판 다음엔 무엇일까요. 인간의 무지와 무절제의 탐욕으로 인한 대량소비와 무한한 쓰레기들로 공동의 집인 지구의 병이 날로 깊어지니 말입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세상 것들에 집착하여 뒤돌아 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깨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똑같은 자리에서의 삶인데 내적 상태는 이렇게 달랐다는 것입니다. 내적으로 깨어 있는 영혼은 구원이지만 생각없이, 영혼없이 살아 온 이들에겐 자업자득, 버림받는 심판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제자들과 예수님이 주고 받는 말씀도 오늘 우리에게 주는 화두입니다.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그 누구도 하느님의 심판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 천지 자연의 법칙은 광대하여 엉성한 듯 보이지만,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은 빠뜨리지 않는다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직답을 피합니다.
한마디로 죽은 시체처럼 살지 말고, 오늘 지금 여기 삶의 꽃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깨어 본질적 깊이의 맑고 향기로운, 지혜롭고 투명한 삶을 살라는 말씀이겠습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뿐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이자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뿐이며 이 거룩한 미사 또한 답이 됩니다. 평생 영성교육에 매일미사보다 더 좋은 공부도 없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사랑과 지혜 가득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시편51,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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