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간들이 생각하는 인자(人子)의 날 (루카17,26-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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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11-17 | 조회수16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인간들이 생각하는 인자(人子)의 날은 하루라도 보지 못할 것이다.
복음(루카17,26-3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사람의 아들(人子)의 날인데 하느님에 대한 무지(無知)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혼인(婚姻)잔치를 위한 곧 구원을 위한 말씀을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닌 세상의 삶, 현세(現世)에 만족을 위한 먹고 마시며 혼인(婚姻)에 충실했던 이들은 영원(永遠)한 어둠인 땅(지옥)에 갇히게 된다는 말씀이다.
독서(지혜13,1-4)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세상)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匠人)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야훼)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하느님)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 세상에, 현세(現世)의 삶에 충실(充實)했다는 것이다.
(1코린15,19)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이다. 곧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십자가의 공로(功勞)로 지난날의 잘못, 죄를 용서(容恕) 받았으니 앞의 삶, 내일의 삶 곧 영원한 생명(生命)인 하늘나라를 향해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라는 말씀이다.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 롯의 아내는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약속 앞에서 육(肉)의 화려했던 그 삶을 놓지 못해 미련이있어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다.(창세19,26) 소금은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뜻한다. 곧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계약인 구원의 약속, 말씀을 뜻한다.(미수18,19참조) 그런데 롯의 아내는 하느님께 받은 그 구원의 소금계약, 그 약속의 말씀을 듣지(지키지) 않아 그녀 자신 안에 넣어주신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이 굳어버린 소금 기둥이된 것이다.
33 제 목숨(육)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버린)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심판의 날)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두 사람이 한 침상(寢牀)에 있다는 것은 하나, 한 몸을 뜻한다. 곧 둘을 하나로 데려 가신다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죄를 대속(代贖)하시고, 당신의 신부(新婦)로 한 몸의 하나로 데리고 가신다는 말씀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맷돌질- 생명(生命)의 양식(糧食)을 만드는 일이다. 곧 신앙(信仰)인들, 제자들, 신자들을 율법(제사와 윤리), 계명(係名), 그 옛 계약이 아닌 그 둘의 법(法)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피(血), 그 새 계약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라는 말씀은 육(肉)은 버리고(죽이시고) 영으로 살려 데려가신다는 말씀이다. 오늘 입당송을 보면 “하느님의 거룩한 이들은 주님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법을 따라 끝까지 한마음 한 믿음으로 형제들을 사랑하였네.” 하셨다. 하느님의 법(구약)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는데, 그 하느님의 법을 우리 인간은 구원에 이르도록 지켜낼 수가 없어 예수님께서 대속(代贖)으로 다 지켜내시고 구원하시겠다고 약속(約束)하신 말씀이 신약(新約)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죄인이었던 우리가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피(血), 대속(代贖), 그 사랑으로 추잡(醜雜)하고 더러운 모든 죄(罪)가 다 씻겨 거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 이웃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서로 서로 나누는 그 이웃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령(聖靈)의 이끄심으로 끝까지 그 주님의 사랑을 진리(眞理)로 지킨다는 것이다. 곧 나와 너, 우리의 머리가 잘리고(肉이 죽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우리는 그분의 지체(肢體)로 그분과 하나(한몸)가 되어 받는 구원(救援)이라는 것이다.
36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3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 예수님께서 ‘가지 말라’ 하셨던 육의 욕망(慾望)을 위한 곳, 인간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찾는 하느님나라, 그 헛된(거짓된) 곳에 죽음(死亡)이 있고 그곳에 죽음을 노리는 독수리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洪水), 롯의 때의 하늘의 불과 유황(硫黃), 그 모든 것은 육(肉)을 죽이기(否認) 위한 하느님께서 보내셨던 교육(敎育)용 도구(道具)들이라는 것이다. 그처럼 독수리 또한 그렇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無知) 때문에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몰라 하느님의 말씀을 법으로만 지킨 선(善), 명예(名譽), 의(義)의 그 육(肉)을 죽이시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구원의 의로움으로 살리시기 위해 보내신 독수리’인 것이다. 자신이 죄인(罪人)임을 아는 이에게는 용서(容恕)의 길이 있지만, 자칭 의인(義人)에게는 용서의 길이 없기에, 그 육의 자만(自慢), 교만(驕慢)을 부수시고 다시 살리시려는 하느님의 자비(慈悲)인 것이다. (루가1,50-55참조)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를 알라고, 의탁(依託)하라고, 육을 죽이시는 홍수, 불과 유황, 독수리를 만나기 전에 내 뜻, 의로움을 세우는 신앙을 부인(否認)하고 하느님의 뜻, 의로움을 위한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은총이 가득하신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사랑하는 저희 모두를 의탁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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