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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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1-30 | 조회수19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마태 4,18-22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다리를 다쳐 꼼짝할 수 없던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다가오는 것도 함께 있는 것도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가 가까이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고 그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수치스러웠습니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늘 말없이 제 옆에 있어 주었습니다. 내가 힘겹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넘어지지 않게 나를 받쳐 주었고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덧 그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해지고 그에게 마음으로 고마움을 느낄 무렵, 다친 곳이 다 나은 내가 홀로서기 시작하자 그 친구는 나를 떠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로 갔습니다. 그는 아마 지금도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자신을 내어 주고 있을 것입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목발’입니다.]
어느 수녀님이 다리를 다쳐 한참 동안 목발에 의지하며 지냈던 시간을 회상하며 목발에 대한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을 찾아가 그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가 다 나으면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떠나 또 다시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는 ‘목발’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과 비슷한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특정 사람에게 매여살지 않는 신부나 수도자들의 삶은 ‘목발’같은 인생입니다. 자신을 찾아주지 않아도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자신을 붙잡고 일어서도록 묵묵히 ‘다리’가 되어주다가, 그들이 홀로 걷기 시작하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홀연히 떠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가는 삶.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용기가 되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위로가 되기 위해 언제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삶.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신과 함께 사람들을 ‘낚아보자’는 그 한 마디에 홀연히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고통받고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묵묵한 헌신으로, 깊은 사랑으로, 조건을 따지지 않는 희생으로 그들의 마음을 한 번 움직여보자고, 그래서 그들이 하느님 곁으로 모여들어 그분께서 펼치시는 ‘구원’의 그물에 걸려들게 해 보자고, 그렇게 그들이 살아가는 진짜 기쁨이 무엇인지,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자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손을 잡기 위해 자기들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리고 삶의 ‘목발’, 영혼의 ‘목발’, 신앙의 ‘목발’이 되어준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죄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고 하느님께서 펼치신 구원의 그물을 향해 힘껏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우리들 각자를 부르십니다. 당신을 대신하여 힘들고 괴로운 삶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목발’이 되어달라고, 그래서 그들도 우리처럼 구원의 그물에 걸리게 해 주자고 부르십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것,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희생과 봉사와 사랑으로 그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 물론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힘들어서 싫다고, 나는 그럴 능력도 시간 여유도 없다고 주님께서 내미신 손길을 뿌리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의 목발이 되어주는 만큼, 나의 사랑, 봉사, 희생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내가 나중에 구원받을 가능성도 점점 커질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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