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그분 오심을 준비하는 우리는 / 대림 제2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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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2-16 | 조회수17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그분 오심을 준비하는 우리는 / 대림 제2주간 토요일(마태 17,10-13) 대림시기 중간 시점에 다다른 지금,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리저리 바쁘게 보낸 시간뿐인 것 같다. 한 해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마음에 수많은 모임에다 선물 준비가 더해져 차분한 분위기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더할 나위 없이 조급 그 자체이라나. 그러다보니 막상 성탄절이 눈앞이라도 기쁘고 뿌듯한 마음보다는, 뭔가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앞설 때가 훨씬 더 많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엘리야가 먼저 와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사람의 아들도 그들께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이 ‘엘리야 재림’ 그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에 대해 이르셨다. 그는 기원전 9세기경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유다인들은 그를 모세와 동등한 서열에 둘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남긴 이다. 북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임금이었던 아합 시절에 등장한 그였다. 당시는 다들 물질 숭배와 바알 우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제관들을 제거하며 하느님의 힘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회오리바람에 실려 승천한다. 그래서 그 백성은 종말이 가까워지면,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 믿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그가 이미 왔다면서,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라고 대답하셨다. 마음이 완고한 율법 학자들은 여전히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곧장 열렸다면, 그가 전한 회개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엘리야가 돌아왔음을 깨닫고는, 곧 요한이 새로운 엘리야였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이 엘리야에 비유하셨다. 당신 오심을 준비했던 그에 대한 평가였다. 위대한 이 뒤에는 항상 숨겨진 누군가가 있다. 주인공을 돕는 이름 없는 조연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주연이 빛난다. 요한은 자신의 그 위치를 깨달았다. 그러기에 “나는 그분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외쳤다. 진정 겸손한 이는 이처럼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이일 게다. 이러니 요한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으뜸인 조연’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말씀을 전하며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그가 하느님의 정의를 세우고자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설파했지만, 그 잘난 백성들은 그들의 메시아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조건부 신앙만을 지녔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보다 오직 요구 사항만을 나열했기에. 사실 우리도 주님께 그 무엇을 바라기보다, 그분께 무엇을 해 드릴지를 늘 생각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 우리 부족한 점을, 다 채워 주실 것이니까. 이제 대림시기가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매번 분주한 일상이지만, 우리 마음을 주님께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불타오르게 하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그것이야말로 성탄을 기쁘게 맞이하는 데 필요한 큰 준비일 게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삶은 신앙을 지키고 쇄신하는 거다. 구원의 은총은 거저 주어지지만, 구세주를 맞이할 자세는 필요하다. 불의에서 빠져 나와 하느님 계명을 지키는 삶, 마음을 비워 하느님 은총이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연말에 많은 것을 정리한다. 신앙에 방해되는 것들을 정해, 치울 ‘목록’에 차도록 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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