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4주일 나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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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2-24 | 조회수13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대림 제4주일 나해] 루카 1,26-38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라톤이나 싸이클 같은 개인 스포츠에서는 서로 엇비슷한 실력으로 엎치락 뒤치락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라이벌’이 있어야 기록이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서로 경쟁하는게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력적으로 지치고 마음이 느슨해질 때 옆에서 함께 뛰는 존재가 있다는게 심적으로 의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단 스포츠에서만 그런게 아니지요. 우리 삶이라는 여정은 혼자 달리기에는 외롭고 힘이 듭니다. 옆에서 함께 달리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는, 힘들 땐 위로가 되고 느슨해질 땐 독려해주는 동반자가 함께 있어야 우리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고 우리 각자는 그런 건강한 관계 속에서 성숙해지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협조를 구하십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유의지로 당신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며 함께 하기를 바라십니다. 허나 당신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시는게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니 부족한 우리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당신 뜻을 이루실 수 있지요. 단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 즉 우리의 참된 행복과 구원이라는게 우리가 스스로의 의지로 원하고 선택하지 않으면 의미도 효과도 없기에, 당신께서 친히 우리의 동반자가 되어주시겠노라고 먼저 손을 내미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손을 잡고 그분을 따라나서야겠지요. 그러면 그분께서 지치고 괴로울 때 힘과 용기를 주시고, 길을 헤매일 때 인도해주시며, 우리가 영적으로 꾸준히 성장하여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내미신 손을 붙잡고 그분께서 이루어나가실 구원의 여정에 기꺼이 ‘런닝 메이트’로 동참한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가 그녀가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게 되리라고 알려줍니다.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면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당신 섭리로 이끌어 주셔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즉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인간의 역사 안에 직접 개입하신 겁니다. 한편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선언한 것은 그녀가 기뻐해야 할 이유를 알려주고, 동시에 그녀에게 어떤 소명이 맡겨질지를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신답니다. 하느님께서 그녀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마음이 아닌 하느님의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하느님께서 앞으로 자기 삶에 일으키실 기적과 표징들을 제대로 알아보고, 그분 뜻을 올바르게 식별하며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였기에,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자기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고, 약한 자기 의지로는 도저히 하느님의 뜻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자신이 뭘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은 것이지요. 많은 이들이 어렵고 힘든 순간이 닥쳐오면 “왜(Why)?”라고 질문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왜’ 내가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고, 계속해서 ‘왜’라는 주제를 붙들고 늘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왜’를 따지며 밀어낼 게 아니라, 먼저 그분 뜻을 내 안에 받아들인 후 “어떻게(How)?”를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그분 뜻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부족하고 약한 나를 통해 당신 뜻을 ‘어떻게’ 이루실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는 ‘어떻게?’를 묻는 마리아의 질문에 구구절절 긴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마리아에게 일어날 그 일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힘’으로 이루어질 거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의 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지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하느님은 불가능을 모르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니 그런 하느님을 굳게 믿으며 그분께 의탁하면 될 뿐, 굳이 ‘어떻게’의 문제까지 신경쓰며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족함과 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그 부분은 알아서 채워주실테니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그 일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며 그분의 뜻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풍성한 결실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느님을 불신하고 나를 위한 그분의 뜻과 계획을 의심하며, 인간적인 것들에 연연하고 의지한다면 내가 예상하는 딱 그만큼, 아니 그만큼도 안되는 부족한 결과를 얻게 될 겁니다. 하느님께 불가능한 일이 없는 것은 그분께서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때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지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의 힘으로 하시는 일이니 불가능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하느님의 뜻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는 자명합니다. 마리아가 먼저 모범을 보이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지녀야 할 참된 희망은 내가 바라는 작은 소원이 이뤄지는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큰 뜻이 나를 통해서, 내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희망’이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굳게 믿으셨기에, 그분 뜻이 당신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셨고, 그 희망을 바탕으로 하느님 뜻에 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명의 결과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지요. 우리가 마리아처럼 각자 지닌 약점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면 내 삶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심을 느끼며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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