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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성탄 대축일 나해, 낮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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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답장 / 조규식 신부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25 조회수187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님 성탄 대축일 나해, 낮 미사]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어느 시골 본당 초등부 주일학교의 성탄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성극이 진행중이었는데, 베들레헴을 방문한 마리아와 요셉이 방을 구하기 위해 여러 여관들을 전전하는 장면이었지요. <여관주인 3> 역할을 맡은 아이가 할 대사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요셉이 여관문을 열고 들어가 "혹시 머물 방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면 쌀쌀맞은 태도로 "방 없어요!"라고 말하면 되었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아이의 순서가 지나갔고 드디어 그 아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여관문을 열고 들어가 머물 방이 있는지 물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여관주인에게 쏠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지요. 사람들은 그 아이가 혹시라도 대사를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마음 졸이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여관주인 3>역을 맡은 아이는 대본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셉. 여기 빈 방이 있어요." 그 아이는 대사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극에서 맡은 배역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던 겁니다. 자기마저 요셉 일행을 문전박대하면 아기 예수님이 이 추운 날씨에 고생하실까봐 걱정되어서, 자신이 오랜 시간 열심히 연습한 배역을 망쳐가면서까지 예수님 일행을 맞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가 그 아드님이 어서 오시기를 바라며 준비하는 사랑으로 응답하여 세상을 구원하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이루어진 이 놀라운 강생의 신비에 대해 요한 복음사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를 더 가까이에서 더 깊이 사랑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작아지시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인간이 지닌 약함과 부족함까지 기꺼이 짊어지셨습니다. 그런 하느님의 사랑은 부족한 우리의 지성으로는 그 깊이와 너비가 어디까지인지 헤아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놀라운 ‘신비’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단지 주님께서 사람의 겉모습을 취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유한하며 부족하고 약한 인간이 되신다는건 그리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지요. 반려견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강아지를 ‘자기 가족처럼’ 대할수는 있어도, 그 반려견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자신이 강아지가 되려고 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부족한 인간의 사랑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넘지 못할 ‘선’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는 그런게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직 그 한가지 이유로 인간이 지닌 한계와 단점, 부족함과 약함까지 기꺼이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덕분에 ‘우리 가운데에 사실’ 수 있었습니다. ‘나’라는 보잘 것 없는 한 사람 안에 하느님께서 머물러 사신다는 뜻입니다. ‘너’라는 한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받아들임으로써 그 안에 사시는 하느님을 내 안에 맞아들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모시는 놀라운 기적은 오직 사랑의 힘으로만 일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 형제 자매를 나 자신처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안에 사시는 하느님을 사랑으로 맞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소개해드린 이야기 속 <여관주인 3> 아이처럼 주님을 내 안에 맞아들이기 위해 내 뜻과 계획을 내려놓고, 내가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나누며, 나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탄 대축일 밤미사에 참여하여 주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신자들보다, 지인들과 함께 ‘파티’를 열어 먹고 마시며 즐기는 신자들이 더 많습니다. 산타가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를 바라는 이들은 많은데, 주님의 뜻에 따라 자신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어주려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한 잔치가 ‘크리스마스’인데, 그 잔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주님의 탄생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에, 정작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셔야 할 주님은 소외되고 그 잔치에 참석한 우리들끼리 이유도 명분도 없는 선물을 주고 받으며 시끌벅적하게 즐기고 끝나는 하나의 ‘이벤트’로 전락해버렸으니 참으로 씁쓸한 현실입니다.

 

성탄 대축일을 보내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은 주님의 탄생을 ‘남의 잔치’로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서 태어나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 마음 안에 주님을 모실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내 삶 안에 그분의 뜻을 실천할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내 마음 안에 주님을 모시고 그분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뜻을 생각하며 그것을 삶 속에서 구체적인 활동으로 실천해야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사시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행복과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실현되겠지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최종목표인 ‘구원’은 하느님과 사랑으로 친교를 맺고 마침내 그분과 완전한 일치를 이룸으로써 그분께서 누리시는 영광과 기쁨과 행복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을 직접 볼 수도, 그분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그분을 만질수도 없기에, 우리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을 수가 없지요. 하지만 주님께서 사람이 되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통해 하느님을 보고 그분 뜻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살고 계시기에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의 뜻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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