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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주의 축복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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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29 조회수151 추천수3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

 

 

수십년간 휴가없이 지낸 수도생활이지만 어제는 용단을 내려 하루 휴가를 내어 영화 두편을 보고 왔습니다. 얼마전 원장수사로부터 식사시간의 조언이 그 계기가 된 것입니다. 순례하는 마음으로 왕복 2시간 거리 우직하게 걸어서 다녀왔습니다.

 

“한 번 영화보고 오시죠. 햄버거도 잡수시면서 ‘노량’과 ‘서울의 봄’을 보세요.”

“고마운 조언대로 공부하는 마음, 애국하는 마음으로 하루 휴가내어 먼저번 얘기 나눈 영화 두편 보고 옵니다. 올 해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입니다.”

 

제가 감동한 것은 영화에서 감지되는 감독이나 영화배우들의 치열한 삶입니다. 온힘과 정성을 다해 이뤄진 작품임을 깨닫습니다. 무거운 감동을 안고 1시간 거리를 걸어서 귀원할 때는 평생 숙제를 가슴에 가득 담고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에는 주목되지 않던 관심이 요즘은 온통 사람에 집중됨을 느낍니다. 그래서 즐겨 읽는 책도 평전이나 자서전입니다. 정말 있어야할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그 책임의 본분에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얼마나 고귀하고 감동스럽고 아름다운지요.

 

이런 성서나 고전같은 분들을 만나면 살아있는 책 한권을 대하는 듯 마음 상쾌합니다. 한마디로 “답게”의 삶입니다. 사람답게, 신자답게, 아버지답게, 어머니답게, 선생님답게, 제자답게, 군인답게, 검사답게, 정치인답게, 수도자답게, 사제답게등 끝이없습니다. 예전 교대학장은 '답게'의 삶을 표방해 호도 '다운'이라 정했다 했습니다. 참으로 각자 제자리에서 제역할의 ‘–답게’의 삶을 위해서는 부단한 수행의 노력과 훈련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노량’ 영화에서의 성웅(聖雄)이라 일컫는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군인다운 삶의 모범이요, 성군(聖君)이라 일컫는 남달리 백성을 사랑하며 훈민정음등 무수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은 왕다운 삶이 모범이겠습니다. 그래서 두분의 동상은 늘 광화문 거기 그 자리에 서있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신학교 시절 교수신부님의 수차례 인용했던 강의중 한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자녀답게’, 즉 ‘하느님의 자녀답게’하면 분명해집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평범한 듯 하지만 비범한 삶이요 우리가 평생 지향해야할 삶입니다.”

 

우리 수도원의 정주의 삶역시 수도자다운 삶을 목표로 합니다. 수도자다운 삶 역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25년전 1998년도 생활성서 10월호에 소개됐던 인터뷰 내용중 일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반봉쇄, 반관상의 정주서원 생활은 자칫하면 안주하고 녹슬기 쉬운 삶이예요. 안으로는 강처럼, 내적쇄신을 거듭하고, 밖으로는 산처럼 한결같이 주님 안에 머무르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수철 원장수사는 안으로는 강이되고 밖으로는 산이 되어야 한다는 말마디에 유난히 힘을 준다. 그는 언젠가 ‘정주’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지었다.

 

‘산처럼 머물러 살면

푸른 하늘

흰구름

빛나는 별들

아름다운 하느님

배경이 되어 주신다.’-1997.8.11.

 

참 좋다. 하느님 안에 항구하게 머물러 살면 그렇게 좋은 것을, 왜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리저리 헤매는 걸까.”

 

말그대로 정주의 축복입니다. 제가 썼던 무수한 시들도 정주의 산물이자 정주의 축복입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는 시도 생각납니다. 지금도 읽다보면 저절로 잔잔히 미소짓게 됩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밤하늘 초롱초롱한 별빛 영혼으로 

사는 이,

푸른하늘 흰구름 되어 임의 품안에 

노니는 이,

떠오르는 태양 동녘향해 마냥 걷다가 

사라진 이,

첫눈 내린 하얀길 마냥 걷다가 사라져

하얀 그리움이 된 이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1999.2.28

 

이런 정주의 축복을 사는 이가 바로 오늘 복음의 시메온입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요한1서 다음 말씀은 그대로 루카복음의 시메온에 대한 주석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옛 계명이면서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니다. 

빛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시기 이전에 이처럼 계명을 지키며 그리스도처럼 살다가 마침내 때가 되자 어둠은 사라지고 참빛이신 주님을 만난 시메온입니다.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주님의 참빛속에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시메온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행복해 보입니다. 정주 축복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날마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 들기전 끝기도때 마지막으로 시메온과 함께 바치는 찬미가요 언젠가 맞이할 선종을 위해서도 이보다 좋은 찬미가는 없습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이어지는 “전능하신 하느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아름다운 강복이 언젠가 있을 우리의 선종의 죽음을 보장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제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녀다운 정주 축복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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