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그분 뵙기를 간절히 희망만 하면 /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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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2-29 | 조회수13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그분 뵙기를 간절히 희망만 하면 / 성탄 팔일 축제 제5일(루카 2,22-35)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이는 다윗 임금이 자신의 반지에 새기고 다닌 글귀라나. 큰 승리에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기쁨에 도취하여 자만하지 않도록, 반대로 큰 절망에 빠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낙담하여 좌절하지 않도록 그는 이 글귀로 마음을 다스렸단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간 살아온 모습을 돌아다보는 때다. 과연 얼마나 복음에 충실하고 기쁘게 살아왔는지 자신을 성찰하자. 이 어떤 특정 시간에 눈바람 추위에서도 굳건히 뿌리 내린 소나무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쏠린다. 저 나무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갈대처럼 흔들리고 눈앞의 어려움과 유혹에 굴복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돌봤는지를 부끄럽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구약의 율법에서도 첫자리에 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시작된 신약에도, 그분 사랑은 은총과 진리로 주어진다. 아기 예수 탄생은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이 가득한 은총으로 완성된다. 신앙인의 삶은 죽기 전까지 하느님 구원을 바란다. 여드레 날에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면서, 그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그것은 이미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그 후 정결례의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 주님께 바쳤다. 또한 주님 율법대로 제물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이가 있었다. 어쩌면 그는 즈카르야, 한나와 함께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의 무리에 든다. 그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면서, 구세주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기에. 이는 성령께서 그에게 메시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을 게다. 그 무렵 아기에 관한 율법을 준수하려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롭게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당신 구원을 봅니다.” 그는 오로지 의롭게 살면서, 성령께서 주신 믿음으로 구원을 손수 기다렸던 그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이렇게 고백했을 수도. 살아온 시간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주님만이 영원하시기에 이제 모든 것을 다 가진 이가 되었다는 뜻이리라. 이렇게 시메온에게는 품안에 안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이스라엘의 주님을 보았다. 아기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참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인간의 손에 들려 성전에 봉헌되셨다. 봉헌 받으셔야 할 분께서 이처럼 봉헌되시는 것은 참 하느님이시지만 철저하게 우리와 같으신 분임을 드러내시려는 것일 게다. 시메온의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내 기도를 쉽게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하느님에게 좌절한 것을 깊게 성찰하자.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의롭게 사는 이에게는 당신 모습을 끝내 보여 주신다.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평생 주님 모습만 기다려 온 시메온은 생의 마지막 한 순간에 아기 예수님을 만나 뵈올 수가 있었다. 이 세상 마지막 다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도 주님만을 기리며 행복하게 살자. 아무튼 예수님 십자가의 삶에는 희생이 담겨 있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도록 다짐하자. 신앙인에게 연말은 예수님의 성탄으로 새롭게 힘을 얻고 주님 사랑을 실천하는 시기다. 우리도 그분 뵙기를 희망하며 온 생애를 계명에 충실하게 의롭게 살면, 우리에게도 오실 그분을 꼭 뵈올 수가 있으리라. 한 해가 저무는 이즈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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