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구원의 희망으로 기도하는 삶을 /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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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2-30 | 조회수11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구원의 희망으로 기도하는 삶을 /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루카 2,36-40) 한 해의 끝이 이틀 남았다. 이 시기에 또 새해를 생각하니 마침은 또 다른 시작의 순간이요, 그 시작은 항상 앞선 마침과 연결되는 게 순리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완전히 기울지 않은 달은 다시 차오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시작이 있으면 마침이 있고, 마침이 있지 않고는 또 다른 시작이 없으리라. 이렇게 시작에서 마침을 보고, 다시 마침을 통해 시작을 찾아볼 수 있는 혜안이, ‘영원한 삶’을 사는 지혜이다. 겨울의 황혼은 이제 긴 밤의 안식을 준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 각자가 가진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봉헌하고픈 시기이다. 아기 예수님의 할례와 정결 예식을 거행하는 자리에는 구세주 오심을 기다리던 여자 예언자 한나도 함께하고 있었다. 불행과 슬픔을 깊이 체험한 여인이었지만, 이것이 그녀에게서 믿음을 빼앗지는 못했고 오히려 하느님을 더 굳게 신뢰하였다. 한나는 비록 84세의 고령이었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단식과 기도를 하며 하느님 백성으로 성전에서 그분의 손길을 기다렸다. 한나는 혼인하여 일곱 해만에 남편 사별하고 오로지 기도와 헌신으로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 희망은 그녀로 하여금 경건한 여인으로 만들었다. 한나는 그 오랜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성전에서 부모에 안긴 아기 예수님을 뵙고서는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그녀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은총을 받았다. 불행과 슬픔을 오랜 기간 깊이 체험하였지만, 그것이 그녀에게서 믿음을 빼앗지는 못했고 오히려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게 했다. 사실 당시 성전에는 이스라엘의 속량을 기다리며 많은 이가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그 중의 일원이었다. 그녀는 고령이었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 손길을 기다렸단다. 사실 그녀는 한나라는 이름이 뜻하는 대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받았다. 그만큼 마음에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분께서는 한나에게 은총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구원의 때를 준비하신다. 구원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때 오기에, 우리도 겸손과 극기로 그때를 기다리자. 하느님 사명을 충실히 따르는 신앙인으로, 그분 구원을 기다리는 이가 되자. 한나가 예수님 구원을 본 것처럼, 우리도 그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주님 곁에 머무르는 이는 세상의 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믿는 이리라. 고통 없이는 은총도 없다. 누군가가 거저 축복받는 듯이 보여도, 사실은 누군가가 그를 위해 기도했거나 희생했기 때문일 게다. 그러니 불평과 낙담에서도 새로운 마음을 지니도록 하자. 마음을 바꾸어야만 세상이 달리 보이기에. 자신이 변해야만 주위도 자연 변화되게 할 수 있으니까. ‘죽음’마저 극복될 변화를 하자. 여든네 살의 과부 한나는 성전에서 시메온과 같은 영광을 누렸다. 그녀는 구세주의 탄생을 보며 자신이 바친 단식과 기도의 응답을 들었다. 그녀는 구세주를 직접 바라보며 기쁨에 가득 차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희망이었고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언제나 최선을 다하게 했다. 한마디로 경건한 여인이었다. 설령 교회의 일에 부정적인 면이 있더라도 신앙의 끈을 쥐고는 교회 공동체와 일치하여야 할 게다. 그래야만 신앙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에. 우리도 한나 예언자처럼 인내심을 지녀서, 구원의 희망을 새기며 기도하는 삶을 살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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