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공현 전 화요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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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02 | 조회수21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주님 공현 전 화요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학자 기념] 요한 1,19-28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저는 타고난 ‘길치’이지만 운전할 때 길 찾아갈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내비게이션이 정확하게 안내해주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가야할 길을 놓쳐 다른 길로 접어들더라도 곧 새로운 경로를 검색해서 알려줍니다. 게다가 요즘은 인공지능까지 발달되어 교통량과 도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제안하기도 하고, 주변에 어떤 편의시설이 있는지 어느 주유소에 가야 더 싼 값에 기름을 넣을 수 있는지까지 알려줍니다. 그런 편리함을 누리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지를 향해 길을 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을 하느님께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은 없을까? 다행히 우리들 각자는 구원의 내비게이션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르지요.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에 거슬릴 것이 없다면 그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뭔가 탁 걸린 듯이 불편하고 양심이 찔린다면 그 일은 즉시 중단하고 다른 길을 찾는게 맞습니다. 이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이 있으니 길 찾기가 어렵지 않지요.
그런데 양심이라는 내비게이션이 종종 오작동을 일으켜 우리를 방황하게 만듭니다. 그 요인들에는 여러가지가 있지요. 먼저 교만이 있습니다. 아담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 때문에 그분 뜻을 거스르는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욕심도 있습니다. 아합왕은 충분히 많은 것들을 가지고 누리면서도 나봇의 하나 뿐인 포도밭을 빼았았다가 하느님께 책망을 듣습니다. 게으름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는 이 게으름 때문에 방심하여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무관심이 있습니다. 부자는 자기 집 대문 앞에 병든 채 누워있던 라자로를 거들떠보지 않았기에 지옥에서 고통받습니다. 음욕이 있습니다. 다윗 왕은 자기 휘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를 탐하여 간음을 저질렀다가 하느님께 벌을 받습니다. 질투가 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질투한 나머지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제 탓으로 자기 왕권을 잃고 맙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극기와 고행으로 욕망을 다스리고 하느님 뜻에 만 집중했기에, 그런 요인들에 휘둘리지 않고 맑고 깨끗한 양심을 간직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답할 수 있었지요. 교만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자기를 드러내어 높이고 싶은 마음에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답했을 겁니다. 엘리야인지, 아니면 모세가 예언한 그 예언자인지를 묻는 질문에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적당히 거짓과 타협하며 인기와 명예를 얻고자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맑고 깨끗한 양심이 그의 영혼을 비추고 있었기에,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있었기에, 요한은 주님보다 먼저 와서 그분의 길을 닦는 선구자로서의 소명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도록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한 대답은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대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단지 그분을 증거하고 따르는 제자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주님이 아니라 나를 내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그분의 뜻을 따르기 보다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지는 않는지, 주님을 이용하여 내 목적을 이루는데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외치는 이’가 아니라 외치시는 분의 ‘소리’가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먼저 나를 비우고 그 안에 주님의 말씀을 채워 그분 말씀이 내 삶을 통해,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널리 울려 퍼지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처럼 내 안에 뭔가를 채우는데에서 기쁨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주관, 고집, 욕심 등을 비우는데에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비워진 그 자리에 주님께서 들어오십니다. 그분께서 직접 내 삶을 주관하시며 내가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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