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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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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02 조회수255 추천수1 반대(0) 신고

240102.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당신은 누구요?”(요한 1,19.21.22

요한은 자신이 외치는 이가 아니고,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나 자신을 외치는 이인가? 아니면 내 안에서 외치는 이를 드러내는 소리인가?
 
사실, 소리를 내는 것은 피리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입니다. 피리가 결코 스스로 소리를 낼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마치 붓이 스스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붓을 쥔 이가 글씨를 쓰는 것이듯이 말입니다. 곧 요한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있는 화살표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피리를 부는 이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를 담아내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는 진정 비워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한은 참으로 비워진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채우는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비워진 데서 오는 기쁨을 찾아야 할 일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기쁨 말입니다. 그러기에 비워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추하게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이들을 자기 발밑에 두려는 것처럼 추한 모습은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을 보십시오! 요한은 자신의 발밑에 다른 이를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다른 이의 발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나, 그 발밑에 내려갈 자격마저 없는 몸이라 고백합니다.
 
“나는 그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
 
본래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종이 그 신발 끈을 풀어주는 법인데, 요한은 그런 종의 일마저도 할 만한 조격조차 없는 부당한 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운 까닭입니다.
 
오늘 우리도 요한이 받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받습니다.
 
“당신은 누구요?”(요한 1,19.21.22)
 
이 질문에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나는 어떤 이인가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닌 존재로 살고 있는 이인가요?’ ‘예수님과는 어떤 결속을 맺고 살아가고 있는 이인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해 봅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새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벗이요.’ 라고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당신은 누구요?”(요한 1,19)

주님!
화살표 같은 존재가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붓이 되어 당신의 말씀을 삶으로 쓰게 하소서.
피리가 되어 당신의 노래를 온몸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만을 드러내게 하소서.
저 자신이 아니라 주인이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생명의 춤이 되고, 당신 축복의 강복이 되게 하소서.
저는 당신의 사랑받는 새끼, 당신의 귀염둥이 아들, 당신의 사랑이니,
당신께만 속해 있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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