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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참 아름답고 멋진 스승인가?”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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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04 조회수270 추천수4 반대(0) 신고

 

-참 스승이신 주 예수님께 인도(引導)하는 자들-

 

 

 

아마도 우리 요셉수도원에서 가장 특징적인 상징물은 수도원의 십자로 중앙의 예수성심상일 것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서 가슴 활짝 열고 주님을 찾아오는 모든 이를 환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 좋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위로와 격려와 더불어 치유의 구원을 선사하는 주님을 상징합니다. 주님 평화의 빛이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주님의 빛입니다. 더불어 연상되는 복음 말씀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새삼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정주처는, 영원한 참 스승이신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예전 예수성심상을 배경한 단풍나무가 사라지니 친히 하늘과 불암산이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써놓은 ‘참된 겸손’이란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성심상

 배경의 단풍나무 사라지니

 친히 하늘과 불암산이 배경이 되어 주신다

 

 단풍나무 배경이

 전부인줄 알았다

 아, 하늘과 불암산을 가린

 단풍나무였구나!

 

 소스라친 깨달음

 배경이신 주님을 가리지 말자

 끝없이 낮아지고 작아져, 한없이 비워지고 겸손해져

 주님만이 환히 드러나는 공(空)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2023.12.30

 

참으로 끝없이 낮아지고 작아져, 한없이 비워지고 겸손해져 우리의 영원함 참 스승이자 배경이신 주님을 가리지 말고 환히 드러나게 하는 공(空)의 사랑의 사람이 멋지고 아름다운 스승입니다. 이런 이들이 참된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영적지도의 두 목표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안내해 주는 일, 또 하나는 자기를 알도록 안내해 주는 일이라 합니다. 둘인 듯 하나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더불어 자기를 잘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스승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입니다. 정말 형제들을 사랑한다면 최고의 사랑은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1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기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요한은 이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것은 바로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 결론을 내립니다. 

 

정말 형제를 사랑한다면 그를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이 참 멋지고 아름다운 스승의 모범입니다. 한 눈에 참스승이신 예수님을 알아챈 세례자 요한이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외치자, 그의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결국은 자기 제자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요한입니다. 

 

자기를 두고 떠나는 제자들이 서운하고 예수님께 질투심이 일어날 듯 한데 요한의 마음은 지극히 순수하고 고요합니다. 정말 비워지고 겸손해져 자기가 없이 주님만 환히 드러내는, 흡사 주님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존재가 세례자 요한입니다. 참스승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대세의 순리이자 자연스런일입니다. 정말 이웃에 대한 참 사랑은 이웃을 참 스승인 주 예수님께 인도하는 일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이제 주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고 세례자 요한도 참으로 기뻣을 것입니다. 이들 제자들의 갈망을 한눈에 알아채신 주님의 물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그대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무엇을 찾느냐?”

 

참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찾는 이들이 참된 구도자들입니다. 누구나의 근원적 갈망이 주님을 찾는 갈망입니다. 주님의 첫 제자들이 된 이들의 물음은 정확했습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주님을 모시고 함께 살며 배우고 싶은 갈망의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대답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와서 보아라.”

와서 보고 듣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야말로 영원한 참스승이신 주 예수님뿐입니다. 여기서 ‘어디에 머물고 계시냐?’는 단어인 그리스어는 ‘메네인(menein)’은 ‘살다(abide)’ 또는 '계속 남다(remain)’라는 뜻으로 복음에서는 항구한 관계를 뜻합니다. 주님곁에 머물면서 주님과 항구한 우정관계를 맺음을 뜻합니다. 

 

그대로 우리의 평생 정주 삶과 일치합니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초대에 응해 자랑스럽고 영예롭게도 영원한 안식처이자 정주처인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머물면서 평생 주님 안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정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의 수도형제들입니다. 

 

무엇을 배웁니까? 사랑을, 믿음을, 희망을, 기도를, 섬김을, 순종을, 겸손을, 침묵을, 경청을, 가난을, 정결을 배우며 이외에도 참 배울 것이 많으며 배움에 있어서는 영원한 초보자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말그대로 배움의 여정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는 주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는 배움터라 우리 수도공동체를 정의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루밤을 묵은 제자들은 깊은 감화를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예수님과 함께 묵었던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에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며 주님께 형을 인도하니, 바로 이것이 진짜 형제 사랑이요, 시몬 베드로에게는 운명적 사건이 되었으니 늘 갈망하던 참스승이신 주 예수님을 만난 것이지요.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번역하면 베드로입니다. 비로소 영혼의 참 스승이자 말씀이신 주님을 만남으로 영적갈망은 해소되어 내적안정과 평화를 누렸을 시몬 베드로입니다. 영원한 안식처이자 정주처인 주님안에 정주의 머무름은 평생과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날로 새로워지고 깊어지는 주님과 사랑의 우정 관계인지 살펴보게 됩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끝으로 26년 전 주님과 날로 깊어가는 우정관계를 염원(念願)하며 써놨던 ‘사랑’이란 시를 나눕니다.

 

“당신 언제나 

 거기 있음에서 오는 행복, 평화

 세월 지나면서 

 색깔은 바랜다지만

 당신향한 내 사랑 날로 더 짙어만 갑니다

 안으로 안으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타오르는 사랑입니다

 세월 지나면서 계속 

 놀랍고 

 좋아지고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1997.3.)-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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