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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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04 | 조회수26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요한 1,35-42 "무엇을 찾느냐?”
행복을 아주 단순한 수식으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 = 소유(have) / 욕망(want)]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수식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누리다보면 삶에 대한 만족감이 커지고 그만큼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니 말입니다. 그러면 더 큰 행복을 누리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분자인 소유를 늘리거나, 분모인 욕망을 줄이거나... 소유를 늘리는 방법은 ‘채움의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욕심내는 비싸고 화려하고 좋은 것들을 더 많이 소유하여 내 집 안을 가득 채우는 겁니다. 그만큼 나도 더 행복해지겠지요. 그런데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여 늘어나진 않습니다. 소유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행복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겁니다. 많이 가진만큼 신경쓰고 챙겨야 할 것들도 많아져 그 스트레스로 인해 오히려 불행해지지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후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불행해지는 이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돈을 소유하면 더 행복해질거라 기대하기에 복권당첨을 꿈꾸지만, ‘일확천금’의 기쁨은 거액의 돈이 처음 내 수중에 들어오는 그 때 잠시일 뿐, 감당하지 못할 그 재물이 삶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려 나를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욕망을 줄이는 방법, 즉 ‘비움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필요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지금 즉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누리는 행복은 세속적인 조건들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상황이 안좋으면 안좋은만큼 욕심을 더 줄이고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기에 바오로 사도처럼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할 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당신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에게 ‘먼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많은 재물만큼 한껏 커져있는 그의 욕망을 줄여주시어 그에게 참된 행복을 되찾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의탁을 통해 그 참된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영원한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스승의 말을 듣고 당신을 따라오던 요한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십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통해, 그분께 대한 믿음을 통해 얻고자 하는게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찾는게 세상의 부귀영화라면, 그분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 소유를 늘리기 위해 주님을 따라갔다면, 그들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겁니다. 그들이 찾는게 하느님 나라라면,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 참된 진리를 배우고 깨달아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주님을 따라갔다면, 그들은 먼저 철저한 자기 비움을 통해 세속에 물들어 한껏 비대해진 자기 욕망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그분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서 참된 기쁨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신앙 안에서 무엇을 찾느냐’, ‘너희는 나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 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 자기 자신을 성찰해봐야겠습니다. 혹시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원하고 있다면, 지금에라도 진정 원해야 할 참된 것,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장 좋은 것, 나로 하여금 더 큰 행복을 누리게 해줄 본질적인 것을 찾고 원하고 구해야겠습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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