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세례 때의 그 초심을 / 1월 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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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1-06 | 조회수26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세례 때의 그 초심을 / 1월 6일(마르 1,7-11)
요한은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큰 능력 지니신 분이 뒤에 오신다. 나는 그분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다. 나는 물로 주지만,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이렇게 그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지극히 겸손의 자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시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울렸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물이 바다에 이르려면 아래로 흘러가야 하고, 하늘에 이르고자 하면 수증기 형태로 순수하고 가볍게 증발되어야 할게다. 세상에서도 마음이 큰 이는 겸손하게 아래로 향한 삶을 살고, 정신이 높고 담대한 이는 맑고 순수한 삶을 산다. 세례자 요한의 그 마음은 누구보다도 더 넓고 맑았다. 그는 자신이 감히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다고 증언하면서, 자신은 비록 물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주지만, 그분께서는 활활 타오르는 성령으로 주신단다. 당시 신을 벗기는 일은 노예에게만 전적으로 맡겨진 미천한 행위였지만, 요한은 그것조차도 적합하지 않는 스스로 작아지는 이라며, 자신의 미천함을 강하게 드러냈다. 실로 그의 영향력으로 볼 때 이런 겸손의 말은 유다인들에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겸손이 정녕 진정성이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세례를 받아, 새 삶을 살 수 있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선포한 메시지를 먼저 실천하는 언행일치의 삶을 보여 주었다. 또한 그는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주님은 더욱 커지시도록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겸손한 삶을 실천하였다. 그의 이러한 삶이 많은 이를 주님께로 이끌었듯이, 우리도 자신보다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늘 내뿜어며 사는 주님 앞세우는 겸손한 이가 될 때에 진정한 선교의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요한은 구약에서부터 전해진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마침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했고, 자신을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라고 낮추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며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는 하느님의 증언을 직접 듣는다. 이 세례 장소에서 삼위일체의 드러냄을 목격한 후 그가 헤로데 앞에서 당당히 진리를 증언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작은 자신보다 크신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이 확신 때문이었을 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 주님이심을 확신하며 살고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내 가족과 이웃에게 어떻게 전하는 걸까? 요르단 강가에서 성스러운 성령이 나부끼고, 하늘에서는 성부 하느님의 음성이 은은하게 울린 그 시각,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신구약의 인수인계가 정결하게 이루어지는 그 모습에, 우리의 세례와 견진을 되새기자. 일 년 중에 가장 춥다는 소한 대한 절기의 길목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세례로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당당하게 드러내셨다. 세례 받을 필요가 없으신 당신께서 모범을 보이시고자, 우리 인간을 위해 세례 받으셨다. 그리고 세례를 통해 우리도 하느님 자녀가 된다는 걸 일러주셨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세례 때의 그 초심을 과연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세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ㄷ주었을까? ‘주님 공현’을 앞두고 진지하게 묵상해야 할 우리들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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