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은 실체(實體), 땅은 그림자 (1사무4,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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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1-11 | 조회수11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1주간 목요일]
하늘은 실체(實體), 땅은 실체(實體)의 그림자
제1독서(1사무4,1-11) 1ㄱ 그리하여 사무엘의 말은 그대로 온 이스라엘에 전해졌다. = 사무엘이 전(傳)한 말은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하늘, 평화(平和), 용서(容恕), 생명(生命)을 위한 약속(約束)이 아니었다.
1ㄴ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 이스라엘은 과거(過去)에 필레스티나의 노예(奴隸)였다.
(판관16,30) 30 삼손이 “필리스티아인들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힘을 다하여 밀어내니, 그 집이 그 안에 있는 제후들과 온 백성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하여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이, 그가 사는 동안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야훼)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야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 엘리 사제(司祭)의 두 아들은 하느님께 뜻으로 들릴 제물(祭物)을 자신들의 뜻대로, 멋대로 먹는 등, 불량(不良)한 사제(司祭)였다.
5 주님(야훼)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야훼)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 야훼 하느님의 계약(契約)의 궤(櫃)로 요르단 강물이 멈추고, 갈라져 이스라엘은 마른땅을 밟고 무사히 약속(約束)의 땅을 향(向)해 건너갈 수 있었다.(여호수3,17- 참조) 하느님의 계약(契約)궤(櫃)로 예리코의 강한 성읍(城邑)을 무너뜨리고 예리코의 힘센 임금(王), 용사(勇士)들을 이길 수 있었다. (여호수6,2-20) 본문에서도 “저 신(야훼)은 광야(廣野)에서 갖가지 재앙(災殃)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神)” 이라고 팔레스타인들 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스라엘이 팔레스티아에게 패배(敗北)했을까? 그것은 본문 1절에 사무엘이 전(傳)한 말, 곧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인 말씀과 관련(關聯)이 있다.
먼저 ‘하느님의 계약 궤’부터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아카시아 나무로 궤(櫃)를 만들어 순금(純金)을 입혀서 (완성) 만들라고 하시고 속죄판(贖罪板) 또한 금(金)을 입혀서 만들고, 거룹(천사) 둘도 만들어 속죄판(贖罪板) 양쪽 끝에 자리 잡게 하라’고 하셨는데 ~ (탈출25,20-22) 20 커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하여라. 커룹들의 얼굴은 속죄판 쪽을 향해야 한다. 21 너는 그 속죄판을 궤 *위에 얹고, 궤 안에는 내가 너에게 줄 증언판(십계명판)을 넣어라. 22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나고, 속죄판 위, 곧 증언 궤 위에 있는 두 커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일러 주겠다.” = 십계명(十誡命), 그 법(法)으로는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법(法)으로 심판(審判)해야할 커룹(천사) 둘이 죄(罪)를 증언(證言)할 증언판(證言板)을 덮고 있는 속죄판(贖罪板) 때문에 심판(審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계약 궤”의 전체의 뜻, 하느님의 뜻이다. 생각해보자, 하느님의 계명을 온전히 다 지키지 못해 죽어야할 우리다. 그 죽어야할 우리의 죄(罪)를 덮어 커룹 둘이 죄의 심판(審判)을 내리지 못하도록 가린 속죄판(贖罪板)이 누구시겠는가!~ 우리의 모든 죄(罪)를 대속(代贖)하시고 피로 덮으신, 우리 죄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곧 ‘하느님의 계약의 궤’의 완성된 모습이 하느님의 뜻을 다 이루신 “예수님의 무덤”이다.
(요한20,11-12)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커룹)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 속죄판(贖罪板)이신 예수님의 양쪽 끝에 자리잡은 커룹(天使) 둘이다. 그 커룹 둘이 예수님의 대속(代贖), 그 속죄(贖罪)의 죽음 때문에 죄의 심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심판(審判)대신 ‘그리스도의 부활(復活)’ 그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우리 죄의 용서, 해방, 구원, 부활의 소식(消息)인 것이다.
다시~(탈출25,22) 22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나고, 속죄판 위, 곧 증언 궤 위에 있는 두 커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일러 주겠다.” =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 보시기로 하신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빛, 의(義), 새것, 예(yes)”가 된다.(2코린5,17) 곧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相關)없는 것은 보시지 않기로 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계약의 궤, 하느님의 대속, 그 뜻은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뜻, 자신들의 소원(所願)을 위한 말로 들어 실행(實行)하는 것이 패배(敗北)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티아인에 패배한 이유다.
(예레3,16) 16 너희가 *그날 그 땅에서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때, 주님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며, 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 계명(誡命), 법(法)의 심판(審判)의 말씀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
(히브9,5) 5 궤 위에는 영광의 커룹들이 속죄판을 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들을 자세히 말할 때가 아닙니다. =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속죄판(贖罪板), 속죄(贖罪)의 제사(祭祀)를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로마10,1-3) 1 형제 여러분, 내 마음의 소원,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들(율법)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죄(罪)를 대속(代贖)하신 속죄판(贖罪板)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하늘의 의로움을 찾는 것, 깨닫는 것, 믿는 것이 신앙생활(信仰生活)이다. 사람의 자기 의로움을 위한 말씀으로 받아 살면, 그 사람의 의(義)는 차별적(差別的)이고 변(變)하는, 영원하지 못한 의(義)이기에 구원이 없는 패배(敗北)인 것이다.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나병환자(癩病患者)를 고쳐 주심이 육(肉)의 병(病)을 고쳐주심으로 본다면 패배(敗北)인 것이다. 그가 하느님의 말씀(뜻, 지혜)을 사람의 말(뜻, 지혜)로 들어 구원 못받는, 즉 자신의 영(靈)이 썪어 들어가도 고통(苦痛)을 모르는 나병환자(癩病患者)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 계약의 말씀으로 땅에서 하늘의 찾고, 깨닫고, 믿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 참 빛, 참 사랑이 있는 그곳, 그 위를 향한 기도, 발길이 되게 하소서, 서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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