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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닮(예수님을 닮아감)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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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16 조회수248 추천수3 반대(0) 신고

 

-날마다 영적승리의 삶-

 

 

이런저런 묵상으로 두서없이 강론을 시작합니다. <올해 104세, 시인이 되고 싶다> 1920년생으로 올해 104세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새해 소망을 밝힌 글 제목입니다. 제가 반세기전 1970년대 20대 청년기 대학시절 안병욱 교수와 쌍벽을 이뤘던 분으로 참 애독했던 글이 바로 이분의 글이었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다니 참 고상한 소망이요 이 강론을 읽는 모든 분에게 시인이 되라 권하고 싶습니다. 문득 오래전 ‘시인(詩人)’이란 자작시가 생각나네요.

 

“시인(詩人)이 

 어디 따로 있나요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답니다

 당신 향한

 그리움

 끊임없이 송이송이 꽃으로 피어나

 시(詩)가 됩니다”-1998.5.4

 

다음은 김형석 명예교수의 새해 소망을 밝힌 글의 요약입니다. 윤동주 시인과 동급생이었다 하니 참 놀랍고 신기합니다.

 

“지난 연말 문학인들이 모이는 남산 ‘문학의 집, 서울’ 행사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를 낭독했다. 윤동주는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한 내 인생의 첫 시인이다. 긴 세월이 지난후에 구상 시인이 마지막 시인이었다. 앞으로 5년의 삶이 더 주어진다면 시를 쓰다 가고 싶다. 아름다움과 사랑이 있는 인생이 더 소중함을 이제야 알았다. 내 새해 소망은 시인이다. 100세가 넘으면 1년이 과거의 10년만큼 소중하다.”

 

제가 간혹 손님을 맞으면 정갈한(깨끗하고 깔끔한) 음식에 안내하는 수도원 부근의 “남도(南道)의 향(香)’ 음식점입니다. 이름도 시적(詩的)이다 싶었는데 참으로 평범해 보이는 남자 주인이 알고 보니 불자(佛者) 시인이었고 경이로웠습니다. 안에 보물을 숨기고 살아 온 분입니다. 음식점을 찾았던 수도형제가 전해준 시집을 보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분이 쓴 ‘연꽃받침’이란 시입니다.

 

“불암산 자락 불암사

 수많은 외세

 불심으로 이겨내고

 처마밑 풍경울림 

 바람에 실려 구름타고 멀리멀리

 불자를 보듬어 주는

 보살들의 연꽃받침 속세를 밝게 비추리”

 

어제 면담성사를 본 자매도 잊지 못합니다. ‘승희(勝喜) 클라라’란 이름 뜻을 풀이하며 격려의 덕담과 더불어 드린 조언입니다.

 

“영적승리로 빛나는 기쁨을 살라고 승희에 빛을 뜻하는 클라라 성녀 세례명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영적승리로 빛나는 기쁨을 사세요. 이런저런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들은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개의치 마세요. 감정따라, 기분따라, 마음따라 살지 말고, 하느님만을 향해 일상의 평범한 ‘삶의 궤도’ 따라 한결같이 중심과 질서가 잡힌 삶에 항구하세요.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가면서 감정의 파도는 잔잔해지고 마음도 순수해지고 고요해질 것입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힘들수록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 사랑 안에 고요히 머무르는 시간과 장소 마련이 필수입니다. 나름대로의 외딴곳, 오솔길을 마련해야 합니다. 문득 오래전 써놓은 ‘너 오솔길 있는가?’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너 

 밖에든 안에든 오솔길 있는가?

 아무도 모르는

 임과 나만이 아는 오솔길

 임이 그리워 목마를 때 찾는 오솔길

 임과 함께 걷는 오솔길

 늘 걸어도 늘 그립고 아늑한 오솔길

 너 있는가?”-1998.7.28.

 

저에겐 수십년간 걷는 하늘과 불암산에 활짝 열려있는 배밭사이 오솔길, 하늘길입니다. 26년전 시를 이렇게 강론에 인용하니 참 놀랍고 신기하니 이 또한 주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늘 읽을 때 마다 환희심(歡喜心)을 일으키는 제가 참 좋아하는 시편 성구를 어제 낮기도 성무일도 시간에 만나 기뻤습니다. 

 

“오 내 하느님, 당신 뜻을 행하는 것이 내 기쁨이오니

 내 맘속에 당신 법이 새겨져 있나이다.”(시편40,9)

(To your will, O my God, my delight, 

 and your law is within my heart)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마음마다 새겨져 있는 주님의 법, 사랑의 법입니다. 그러니 바로 참기쁨, 참행복은 주님의 법, 사랑의 법에 따른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이 길말고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일뿐 참기쁨, 참행복에 이르는 길은 없습니다. 바로 이를 깨달아 하닮의 여정, 예닮의 여정에 항구하며 날로 주님과 사랑과 신뢰를 깊이했던 주님의 절친(切親)인 성인들이요 주님의 절친이 되는 것은 제 간절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새삼 인간의 본질은 무지도 허무도 탐욕도 아닌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누구나의 마음깊이 새겨져 있는 주님의 법, 사랑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밖엔 답이 없다, 길이 없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다윗을 비교하는 것이 이해의 핵심입니다. 다윗의 자유로운 처신을 능가하는 예수님의 저 자유로운 처신은, 안식일법을 상대화시키는 저 자유로움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할까요? 신기하고도 부럽지 않습니까?

 

답은 하나입니다. 이분들의 주님과 참으로 깊은 절친 관계에 있기에 저토록 자신감이 넘치고 확신에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에 대한 주님의 신뢰와 사랑을 철석같이 믿는 자존감 충일한 삶이기에 저리도 추호의 망서림이나 두려움, 불안이 없이 당당합니다. 그대로 주님과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주님의 신뢰와 사랑을 확신할뿐 아니라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신뢰했던 두분이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와 일치의 삶을 사셨기에 예수님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반영인 것입니다. 그러니 예닮의 여정은 그대로 하닮의 여정이요,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분별의 잣대임이 오늘 복음 말씀이 그대로 입증합니다. 예수님 마음이 하느님 마음이요 예수님 사랑이 하느님 사랑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절대적 법은 ‘사람이 먼저’라는 사랑의 법이요, 사랑의 법 자체인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처신하였을까 생각하면 곧 답이 나올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예닮의 여정중에 날로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하는 것이 자유와 행복의, 분별의 요체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자유, 참행복, 참 분별의 지혜도 주님과의 깊어가는 우정과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안타깝고 아쉽지만 이점에서 실패한 제1독서 사무엘 상권의 사울입니다. 사무엘의 슬퍼하는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하느님께서 참 너무하시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우리에게 참 좋은 경고의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주님의 마음은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떠났고 이 또한 엄중한 현실입니다. 사울의 부주의와 불순종으로 자초한 불행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매순간 주님과의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보살펴야 한다는 진리를 배웁니다. 즉각적인 회개와 실행입니다. 하루하루 연장되는 날은 주님과 사랑을 새로이 깊이하라 주어지는 선물과 같습니다. 살아있을 때 기도와 회개, 공부와 사랑, 찬미와 감사이지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예닮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삶의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일년사계로 압축할 때, 어느 시점(時點)에 위치하고 있겠는지요? 이건 제가 참 많이 누누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성찰이 오늘 지금 여기서 거품이나 환상, 허영이나 교만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우정을 깊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게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닮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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