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하느님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 연중 제2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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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1-16 | 조회수15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하느님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 연중 제2주간 화요일(마르 2,23-28) 우리는 상대가 나와의 다름을 종종 참지 못한다. 나와 다른 그가 틀렸다면서, 더 이상 소통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화가 생기고 다툼이 인다. 사랑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할 게다. 그렇지만 상대방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사랑은 참고 기다리는 것 아닌가? 참는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일 게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을 보면 죽는다고 믿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뵐 수 없다는 거다. 아니 만날 수 없었으리라.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을 믿고 닮는 일이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비운 그 자리에 그분께서 들어서실 수 있게 해야 한다. 낮추어야 그분 만날 수 있다. 교중 미사 참여는 안식일, 즉 주일을 지키는 최소한의 기준이란다. 그래서 이날 미사 참여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종종 착각을 한다. 물론 성체를 모시면 그야말로 거룩히 지낸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많은 이가 주일을 의무적인 미사 참여의 날 정도로만 여긴다. 만약 불참하면 고해성사를 봐야하기에. 그게 귀찮아 성당에 간다나. 누가 뭐래도 미사 참여가 의무인 건 틀림없지만, 그게 전부로 믿는다면 신앙의 깊이는 그리 더하지는 않을 수도.
사실 이러한 율법이 하느님의 인간 사랑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당시 유다교에서도 전대미문의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러기에 본질적으로는 그들이 제정한 율법에서도, 안식일 준수가 사람에게 심각한 손실을 끼칠 때에는 그 의무가 면제되었다. 어떤 라삐는 이와 관련해서, ‘안식일이 너희에게 맡겨진 것이지, 너희가 안식일에 맡겨진 것은 아니다.’ 하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안식일 법이 하느님을 위한 법으로 제정되었다면, 그것은 마땅히 사람을 위한 법이어야만 한다. 만에 하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면, 하느님도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고자 만들어졌고, 그러기에 법 역시나 하느님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리라. 이처럼 안식일의 근본은 하느님 안에서 머물고, 그분께 감사를 드리면서 쉬라는 것일 게다. 음식을 준비하지 말고 땔감을 모으지 말며, 불 피우지 말라는 뜻은 하느님 섬기는 일에 지장이 생기기에. 사실 제자들이 배고파 밀 이삭 뜯어 먹은 것은, 외면상으로 안식일 규정을 어긴 거다. 그러나 예수님 구원 사업을 도우려고 따르는 제자들은, 안식일의 주인을 섬기는 중이었다. 더구나 예수님 가르침은 율법은 사람을 얽어매려는 것이 아닌, 하느님 사랑을 더 실천하려고 제정되어진 것이란다. 이렇게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그분께서 창조한 인간 사랑에 그 기초를 둔다나. 따라서 안식일 법이 하느님을 위한 방법으로 제정되었다면, 그것은 동시에 사람을 위한 법이 되어야만 한다. 법다운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고자 만들어졌기에, 법인 것이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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