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안식일의 주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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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1-16 | 조회수17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예전에 학사 석사 박사 공부하면서 나름 같이 공부한 학생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 공부 하나만 집중해서 계속 했으면 좋으련만 ..그랬습니다. 집에서 학비를 지원 못하겠다고 하는데 참 ..답답 했습니다.
학교는 주간이었고 학교에서 요구하고 있는 수준이 있는데 따라가기 위해서는 아침에 8시전에 학교에 와서 공부에 집중해도 따라갈까 말까 하는 그런 수준입니다. 그런데 Part로 일을 해야 했고 나름 짬을 내서 공부를 했습니다. 수업 따라가기도 힘들었습니다.
나름 집중해서 공부 했다고 하나 그러나 많이 부족했지요. 그 부족한 공간이 졸업하고 나서 많이 커 보였고 지금까지도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예전에 서울대 출신이고 박사는 MIT 출신인 박사님을 알고 있는데 이분도 매번 연구소 미팅이 있어서 들어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면 연구와 관계없이 공자왈 맹자왈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분도 학교 다닐때 집에서 학교 가지말구 돈벌어와 하는 소리를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난 분이긴 하지만 학교 다니면서 4년 내내 가정 교사로 일을 해서 공부는 아무것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대 석사를 간 것이고 지도 교수님이 그 박사님을 잘 보아 주셔서 MIT 박사 시험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대는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데 MIT박사님도 참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자왈 맹자왈 하신 것입니다. 없는 집안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움이 있고 참 괴로운 것인지 잘 알아요. 성당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돌아가신 신부님은 유복한 집안에서 공부하셨고 나름 길을 찾아가신 분입니다.
신부님이 저의 가정 환경을 잘 아시는 관계로 저를 놓고 묵상하시면 항상 마음이 아파 하셨습니다.유복한 집안에서 공부한 자신의 집안 식구들을 바라보다가 저를 바라보면 마음이 짠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난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도 가난 속에서 사목활동을 하시다 보니 제자들이 끼니도 넘기고 배가 고픈 환경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님의 삶의 목표가 돈을 많이 벌어서 유복한 환경 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재산을 나누는 것이 아니었고 참 선과 하느님의 나라 건설이 우선이었습니다.
사목자로서 길을 가는데 모든 순간을 요술 방망이로 모든 것이 준비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 들이면서 가신 길이라 현실과 사목의 Gap이 너무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자들이 배를 고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안식일에 일을 한다고 시비를 거는 바리사이들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보고 사랑 실현이 우선인데 그들은 나름 율법을 내세우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괴롭힙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결핍입니다. 성령 부재로 인해서 모든 일을 그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 부재로 인해서 모든 것이 어긋나고 있습니다. 성령의 부재?? 시뫼온과 한나, 세례자 요한과 같이 성령의 인도와 수행이 없이 주님의 행동을 비판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 오늘 복음에서의 바라사이의 잘못입니다.
돌아가신 신부님도 유복한 집안이었지만 그러나 수양을 많이 하셨고 나름 고행하시면서 주님 닮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저같은 삶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중심으로 수양의 길이라는 것이 결국은 비천한 이들을 나의 부족한 삶이라고 공감하고 그들과 하나되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되는 것인데 그것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이지요. 항상 역지 사지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우선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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