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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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16 | 조회수135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2주간 화요일] 마르 2,23-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영화 <기억의 밤>을 보면 자기 부모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 한 아이가 부모의 복수를 하기 위해 평생을 칼을 갈며 기다립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기가 복수해야 할 대상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버렸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복수를 해봤자 의미가 없지요. 그래서 일단 그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줍니다. 그런데 기억을 회복한 그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니었습니다. 본래는 매우 착한 심성을 지닌 이였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지요.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신보다 오히려 그가 더 선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복수를 포기하게 되고 그 순간 자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인간은 ‘이유’를 찾는 존재입니다. 특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야 자기 삶이 ‘의미’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게 집착하는 삶의 이유에 자기 자신이 지배당하게 됩니다.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없으면 자기가 왜 살아야 할지 그 이유를,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여겨 불안해하는 겁니다. 그것이 없으면 나도 없는 거라고 여기기에 죽기 살기로 그것에 매달리고 그러다 그것에 종속됩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돈에, 누군가는 권력에, 누군가는 인기에 종속되어 결국 자기 자신을 잃게 되지요. ‘객’이 ‘주’를 집어삼키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이 ‘안식일’ 규정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그들에게는 안식일 규정이, 더 나아가 613개 조항의 율법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의미였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켰기에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단죄해도 되는 정당한 권한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이 있기에 자신이 있는 거라고, 율법이 곧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곧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조목조목 비난하고 철저하게 단죄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점 내 삶에서 ‘나’는 사라지고 ‘율법’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이 저절로 존재할 수 없음을, 고유한 뜻과 의도를 가지고 나를 창조하신 분이 따로 계심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내 삶과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으로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는 존재가 세상의 부질 없는 것들에 잡아먹히지 않습니다. 엉뚱한 데서 이유를 찾고 의미를 찾다가 길을 잃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진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그 계명 자체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옭아매라는 뜻이 아니라,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기 위해 계명을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이 내가 살아갈 이유이자 의미가 되도록 그분의 뜻을 헤아리고 잘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올바르게 식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걸 하면 안되는지를 따지고 신경 쓰느라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구원은 비난과 단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계명의 근본정신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완성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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