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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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18 | 조회수32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마르 3,7-12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넘지 말고 지켜주어야 할 ‘선’이라는게 있습니다. 우리는 그 선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존엄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며 지켜주는 행위를 ‘존중’이라고 부릅니다. 상대방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배려하지 않고 그를 이용하여 내 목적을 이루는데에만 혈안이 되어 마음대로 ‘선’을 넘으면 그는 그런 나로 인해 불편해하고 불쾌해하며 마음에 상처를 받지요. 그리고 그 상처가 점점 커지다보면 그와 나 사이의 마음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관계가 끊어져버리고 맙니다. 소중한 존재를 영영 잃게 되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 욕심과 뜻만 생각하며 예수님을 밀쳐대는 군중들의 모습이 바로 ‘선’을 넘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정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분이 어떤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그 마음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분의 ‘능력’에 집착하며 그것을 이용할 생각만 할 뿐입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에 빠져 예수님을 자기 목적을 이루는데 쓸 ‘도구’처럼 대합니다. 즉 그분을 ‘물건 취급’했던 겁니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무례한 행동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군중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십니다. 욕망과 집착으로 선을 넘어 바짝 밀착된 상태에서는 그분의 참된 모습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어서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무엇을 청할 때에는 그분이 내가 청하는 그 일을 하고자 하시는지 그분의 뜻을 먼저 묻고 확인해야 하는데, 그리고 그분이 어떤 선택을 하시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데, 빚쟁이가 빚 독촉하듯이 자기 뜻을 따르라고 예수님을 다그치고,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아간다는 태도로 그분께 은총을 요구하며 심지어 강제로 빼앗아 가려고까지 하니, 군중들이 그런 잘못된 방식으로 당신을 밀쳐대는 일을 잠시 멈추고 거리를 두어 ‘선’을 지킨 상태에서, 믿음과 순명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당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신 겁니다.
물론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당신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히면 주님과 그분 뜻을 보지 않고 자기가 바라는 은총의 결과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은총과 믿음 모두를 잃게 되지요. 그러니 욕망의 눈이 아니라 믿음과 순명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봐야겠습니다. 내가 그분께 원하는걸 청할 생각만 하지 말고, 먼저 그분의 뜻을 묻고 헤아리며 따라야겠습니다. 때로는 나의 기도에 ‘침묵’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 거리를 둔 채 그저 지켜보시기만 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믿음만은, 내가 그분께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만은 절대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래야 믿음의 ‘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그 선이 주님께 대한 우리 믿음을 더욱 굳건하고 건강하게 만들 것이고 마침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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