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4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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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30 | 조회수26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마르 5,21-4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율법이 중심이 되는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그래서 어깨에 힘깨나 주고 다니는 회당장이 나자렛 시골마을에서 자란 가난한 목수의 아들 앞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누구 앞에 납작 엎드린다는 것은 그에게 완전히 항복한다는 뜻이고, 모든 것을 그의 처분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야이로’라는 이름의 회당장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그가 사랑하는 어린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처럼 예수님 앞에 엎드린 야이로의 마음에 간절함은 가득했을 지언정, 예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깊어지고 단단해질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지요.
야이로가 예수님께 청하는 내용 안에서 아직은 미성숙한 그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예수님께 구구절절 이렇게 청하지요.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자기 집까지 함께 가셔서 자기 딸의 아픈 부위에 손을 대 주셔야만 그녀의 병이 나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예수님이라고 해도 자기 딸이 죽은 다음에는 손 쓸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짧은 생각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판단하고 제한하는, 미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꺼이 그를 따라나서십니다. 그리고 때마침 그의 믿음을 성숙하게 도와줄 조력자를 만나시게 됩니다.
열 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인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기대는 간절함과 더불어 깊은 믿음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짧은 생각 안에 ‘능력의 주님’을 가둬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굳이 귀찮게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가지 않아도, 굳이 그분이 가시는 길을 방해하지 않아도, 그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그저 육체적인 질병이 낫기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통해 구원 받고자 했습니다. 주님의 능력 덕분에 병이 나으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자기 병이 낫지 않더라도 주님을 통해 참된 구원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 믿음과 희망으로 자기 앞에 놓인 고통과 시련마저 극복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녀의 굳건하고 성숙한 믿음을 보시고, 그녀에게 구원을 선포하심과 더불어 육체적 질병의 치유라는 은총까지 허락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야이로는 전전긍긍,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시간이 너무나 지체되는 사이에 자기 딸의 병세가 악화되어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가 걱정했던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맙니다. 그의 딸이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이지요.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는 충격과 절망, 아빠로써 그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당신의 놀라운 능력으로 죽었던 그의 딸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야이로’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 깨우침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야이로는 이 일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믿는대로 응답해주시는 분임을, 그래서 우리 믿음을 깊고 단단하게 만드시기 위해 때로는 고통과 시련, 기다림과 절망을 겪게도 하심을, 내쪽에서 주님께 대한 희망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 뜻을 이루시고야 마는 전능하신 하느님이심을 깨달았을 겁니다. 단지 죽었던 딸이 되살아난 것보다, 자신과 가족이 그런 참된 깨달음을 얻은 것이 그에게는 더 의미있고 기쁜 일이었겠지요. 그리스도인은 생명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는 이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세상의 것들을 잃게될까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을 온전히 믿는데에서 시작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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