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돈보스코 사제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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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1-30 | 조회수525 | 추천수8 | 반대(0) |
오늘 사제평의회가 열리고 서울대교구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입니다. 인사이동의 대상이 되는 신부님들은 어디로 가게 될지 궁금할 것입니다. 교구에서는 인사이동을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첫째는 출신 본당으로 임명하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로 같은 곳에 두 번 보내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로 같은 신부님과 두 번 지내게 하지는 않습니다. 따뜻한 신부님, 사랑이 많은 신부님, 강론을 정성껏 준비하는 신부님, 미사시간 30분 전에 고백성사를 주는 신부님, 함께 사는 수도자와 신부님들과 잘 지내는 신부님, 성체조배를 자주하는 신부님, 합리적으로 본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신부님, 직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신부님,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먼저 찾아가는 신부님이 떠나면 아쉬움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런 신부님은 어디로 가셔도 사랑받는, 존경받는 신부님으로 지낼 것입니다. 그런 신부님들은 어디로 가도 그 자리가 꽃자리가 될 것입니다. 도연명은 歸去來辭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앞으로 다가올 일은 추구할 수 있음을 알았노라. 사실 길을 잘못 들기는 했으나 아직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고, 지금이 옳고 예전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농부가 내게 봄이 왔다고 알려주니, 장차 서쪽 밭에 할 일이 생기겠구나! 부귀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요, 천국은 기약할 수는 없는 것이거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얼 의심하랴!” 뉴욕에서 5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정들었던 사제들이 소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느덧 4명의 사제가 돌아갔습니다. 이제 저도 ‘귀거래사’할 날이 올 겁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어디에 있느냐를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계절은 이렇게 다시 바뀌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봄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느님께 돌아가야 함을 늘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바람과 해님’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나운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했지만 따뜻한 햇볕은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게 했다는 동화입니다. 어릴 때, 이 동화를 읽으면서 감동을 했고, 늘 이 동화는 제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감시와 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잡은 세력은 늘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정과 부패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방송과 언론’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해야 하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 수행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비판을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감시와 비판의 기능이 약해지면 당장의 정책 수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사회는 점점 병들게 되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비판과 비난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이라는 책을 통해서 비판은 사상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말을 했습니다. 비판은 공정하고 사심이 없는 가운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합니다. 비난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시 못합니다. 비난은 질투와 사적인 감정에서 시작합니다. 다윗은 충실한 부하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였습니다. 나탄 예언자는 다윗왕의 잘못에 대해서, 잘못한 일에 대해서 비판을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했고, 다윗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한 여인을 앞에 놓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모두 손에 돌을 들고, 유대인들의 법을 들어 돌로 쳐야 한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 오늘 복음은 비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정하고 올바른 비판은 받아들일 줄 아는 겸허함이 있어야 합니다. 질투와 사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비난은 하지 않는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개선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하고, 고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청하고,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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