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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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31 | 조회수201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 마르 6,1-6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 나자렛 마을을 방문하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나자렛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지혜와, 그분의 손을 통해 일어나는 기적들을 보고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예상치 못한 것’을 보았을 때 놀라워하지요. 예수님을 참된 예언자로, 하느님의 아들로 여겼다면 그분에게서 하느님의 지혜와 능력이 흘러나오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지혜의 구체적인 내용과 기적에 숨은 의미에 관심을 기울였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 상황 자체에 대한 놀라움에 그친 것은 그만큼 자기들과 ‘같은 마을 출신’인 예수님을 얕잡아봤다는 얘깁니다. 그랬기에 기껏해야 천한 목수일 뿐인 예수가, 마리아의 아들이며 자기들과 같이 사는 이들의 친척일 뿐인 그가 자기들에게는 없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걸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사촌이 땅을 산 게’ 영 질투가 나 배가 아프고, ‘왜 나한테는 저런 능력이 없나’하는 생각에 속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모든 능력과 지혜와 힘을 ‘어디서’ 받았을지 그 근원과 출처를 궁금해했지만,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왔을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귀기울여 들었다면, 믿음에 열린 시각으로 그분이 하시는 일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가 아니면 그런 놀라운 일을 할 수 없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도달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기에, 자기들이 아는 예수는 특별히 잘 난 것도 남들 앞에 내세울 것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앎’을 끝까지 고집했기에, 예수님이 지니신 신적 권위를 절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아는게 병’이라고 하나봅니다. 어설프게 아는건 모르는 것만도 못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하느님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무심결에 이런 말들을 내뱉곤 하지요. ‘하느님이 나한테 왜 이래?’ ‘하느님이 정말 계신다면 세상이 이래서는 안되지’... 하지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건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고자 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이렇다’는건 전적으로 내 판단일 뿐 하느님은 이 세상을 당신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창조하셨고 지금 이 순간도 당신 섭리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내 어설픈 앎으로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판단하는게 아니라, 먼저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착각 속에서 자기 마음 속에 만들어 놓은 ‘우상의 하느님’을 붙들고 있으면, 전지전능하신 참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이래야 한다’는 우상에서 벗어나야 그분의 참된 모습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을 나의 좁은 지식 안에 가두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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