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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삶에 의미나 목적을 꼭 찾아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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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04 조회수25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5주일

 

 

 

<삶에 의미나 목적을 꼭 찾아야만 하는가?> 

 

 

 

 복음: 마르코 1,29-39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저는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그러나 은퇴하고도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생각입니다. 사실 아무 하는 일 없이 건강만 챙기고 놀거나 쉬며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느님께서 인생을 즐기다 오라고 창조하셨다고도 하고 그런 삶의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도 말합니다. 인생은 그냥 소풍이고 즐기다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잘 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은 이유 없이 태어나 우연히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늦게서야 삶의 의미나 목적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는 창조자를 배제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존재가 삶의 의미보다 앞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대표적인 철학자가 니체입니다. 그렇더라도 삶의 의미는 찾고 싶었습니다. 이전에 신에 의해 규정된 삶이 감옥처럼 느껴져서 탈출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목적이 없는 삶은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고통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람들을 볼 때 사람들은 대부분 ‘소속감’을 위해 살고 있었습니다. 관계 맺기 위해 타인의 시선이 삶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니체는 신에게 휘둘리나 사람에게 휘둘리나 같은 것이라 여겨 고독한 초인이 되라고 권합니다. 주체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그것이 맞는다고 여기며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니체는 삶의 의미는 있는 게 좋지만, 결국 신은 부정하고 싶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수영 회장은 카이스트에 766억 원을 기부하였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때 나이가 87세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기부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실 때는 전혀 자신의 그러한 결정에 후회가 없어 보이고 당당해 보입니다. 
    이수영 회장은 기자였습니다. 1970년대에 일본산 카메라를 메고 이탈리아 소렌토 지방에 취재하러 갔을 때 일본 관광객들이 자기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 회장은 본능적으로 옷으로 자기 카메라를 가렸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니 우리나라 기업들의 광고판이 외국에도 붙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력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신문사를 나와 소와 돼지를 키웠고 그 종잣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여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그러한 좋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열심히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경희대 한의과에 1,300억을 기부한 분도 있습니다. 이란 왕실 주치의로 있었던 이영림 한의사입니다. 이분은 당시 자신을 가르쳤던 신상주 교수님과 우리나라에도 노벨상 의학상이 나올 연구소를 설립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한의사로 버는 돈으로는 충분할 수 없었습니다. 우연히 이란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왕실 한의사가 되었으며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설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궁즉통이라 바라는 게 있으면 길이 뚫리는 법입니다. 물론 그 돈을 기부하기 전에 신상주 교수님이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이분은 “다시 태어나도 지금처럼 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다가 새벽에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이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다른 이웃 고을들로 가자.”라고 하십니다. 스스로 당신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목표지향적이십니다. 돌아가실 때도 “다 이루었다.”라고 하십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뤄야 할 사명을 지니고 사셨습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갇혀 살던 부족이 있었습니다. 급격한 사막화로 더는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걸어서 사막을 빠져나오려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길을 잃고 죽거나 되돌아왔습니다. 우연히 그곳을 여행하던 영국인 켄 리먼은 길을 찾지 말고 하늘의 북극성을 바라보며 갈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은 말합니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원고를 다시 쓰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그러나 실상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음은 창조자를 인정하는 행위이고 찾지 않는 것은 무신론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부모에게 자녀가 그렇듯이 모든 만들어진 것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창조자에 의해 의미와 목적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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