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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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2-05 | 조회수31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 마르 6,53-56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오늘 복음을 보면 병에서 낫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으로 예수님의 옷자락 끝이라도 붙들고 싶어하는 군중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 마르코 복음 3장에 나왔던 군중들의 비슷한 모습이 떠오르지요.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마르 3,9-10).”
이 두 이야기는 서로 비슷한 듯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몸이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거라 믿고 기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같지만, 그 믿음을 실현하려는 태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겁니다. 3장에 나오는 군중은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무턱대고 예수님을 만지려고 그분께 밀려들고 거칠게 밀쳐대는 무질서하고 무례한 모습이었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군중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절히 청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게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러길 원치 않으시면 하지 않겠다는, 그분의 뜻과 선택을 존중하며 따르겠다는 순명의 마음가짐입니다. 구원의 여정에서는 이 마음가짐이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마르코 복음 3장에서는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걔중에는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은총의 힘 덕분에 병에서 나은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때로 당신께 청하지 않아도 필요한 은총을 알아서 주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먼저 당신께 대한 믿음을 깊게 하시고, 그 깊어진 믿음을 확인하신 뒤에야 치유라는 은총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당신과의 만남이 질병의 치유라는 육체적인 차원으로 끝나지 않고 영혼의 구원이라는 영적인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바랐던대로 ‘치유’ 받은게 아니라, ‘구원’을 받았다고 표현한 점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주님은 그저 우리의 육체적 질병을 고쳐주시는 의사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구원의 과정에 꼭 필요한 경우 치유의 은총까지 더 얹어주시는 분이지, 육체의 병만 고쳐주시는 걸로 끝내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치유와 구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치유는 아픈 부위가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분에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존재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이라면 눈에 보이는 기적, 육체적 질병의 치유에만 매달려 이리저리 몰려다닐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간절히 희망하고 바라며 그것을 위해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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