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설날, 또 한 해를 / 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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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2-10 | 조회수27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설날, 또 한 해를 / 설(루카 12,35-40) 외가로 머슴살이 간 큰애가 와서 마당에 지게를 받쳐놓고 말라 버린 아버지 손을 잡는다. 도회 공장으로 돈 벌러 간 누이도 벌써 와 일손 돕느라 한창이다. 객지에 나간 막내는 빈손이라 못 온다더니, 섣달그믐 한밤중에 사립문 들어섰다. 희미한 등잔아래 초라한 가방에서 버선과 고무신 꺼내어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모두 모였다. “고생들 많았다. 몸성히 왔으니 바랄 게 뭐 더 있겠어.” 설날 아침 차례 지내러 가, 문중 어른께 세배하고 친척과 함께 여기저기 조상들 산소를 찾는다. 하얀 두루마기 차림에 기러기 떼처럼 외줄로 밭길을 간다. 까만 교복의 까까머리, 꽃 댕기 매고 색동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재잘거리는 아이들까지 참 좋단다. 마른 나뭇가지 오가며 지저귀는 까치가 평화롭다. 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날’ 옛 풍습이다. 요즘 많은 이가 힘들단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든 나날을 보내시는 분들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속에 살게다. 이렇듯 희망은 가진 이나 못 가진 이, 배운 이나 못 배운 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희망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며 내일에 대한 꿈이다. ‘설’의 어원은 ‘살’이나 ‘선다.’라고 한다. ‘살’은 한 살 더 먹는 날이라는 뜻이고, ‘선다.’는 장이 서는 것처럼 일 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라나. 그러나 학자들은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에서 나왔다나. 우리 조상들은 이렇듯 한 해를 시작할 때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한단다. 삶이 결코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전능하신 분의 도우심과 조상님들 은덕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임을 수차 느꼈기에 말이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설 아침에 ‘깨어 있으라.’라는 뜻을 되새기자. 그러려면 ‘깨’로 시작하는 말들을 곰곰이 보자. 깨끗하다, 깨뜨리다, 깨닫다, 깨우치다, 등등. 이 말들의 공통점은 다 ‘깨’라는 말이 무언가 부수거나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면 신앙의 의미에서 ‘깨어 있다.’라는 뜻은? 과거의 묵은 자신의 것을 지금 막 깨뜨릴 수 있는 것도. 고정 관념을 깨부수는 것, 하느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온갖 허물을 깨끗이 치우는 것일 수도. 그렇게 지난 해 낡은 삶에서 깨어나 새 한 해를 맞는 것이다. 그렇다. 참된 것 맞으려면 늘 깨끗함으로 자신을 깨뜨려야 할 게다. 그러할 때에 우리는 정녕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과 친교’를 맺을 수가 있을 게다. 우리가 사는 데에는 다른 이의 도움도, 하느님 은총도 필요함을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게다. 또 한 해를 사는데 필요한 도움을 하느님께 구하자. 하여 늘 깨어있는 마음을 갖자. 우리에게 생명 주신 하느님께서, 이제 또 다른 다짐을 갖도록 한 해를 안기셨다.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청하면서 차분하게 내일의 희망을 설계하자. 민족의 크나큰 명절인 설날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삼가고 조심하라.’라는 의미의 ‘설’을 깊게 새기자. 이렇게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만만해 하지 말고’ 하느님 은총과 조상님의 도움을 구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새 옷과 새로운 마음으로 단장하면서 하느님 앞에 깨어 있는 시간을 더 갖도록 다짐하자. 세속의 시간보다 성스러운 시간에 더 머물도록 기도하자. 오늘 우리는 바쁜 세속 생활을 떠나 가족과 공동체의 일체감을 느끼는 명절 기분을 맛본다. 친척들과의 유대감을 새롭게 발견하며 행복을 맛본다. 더구나 믿는 우리는 자신의 뿌리가 가족과 조상을 넘어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새삼 되찾는다. “주님, 또 이 한 해 저희에게 평화를 안기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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