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활묵상: 유혹의 임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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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02-11 | 조회수14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믿음과 신앙을 지키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유혹'입니다. 오죽하면 주님의 기도에서도 유혹에 넘어가지 말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문이 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유혹도 이기려면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유혹에 접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도 어쩌면 그 죄의 양상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결국은 그 죄가 표상하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혹에 넘어가는 심리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면 유혹에 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에 관한 심리학적인 이론이 있습니다. 그런 이론을 도출하기 위한 예시가 신앙에서는 예를 들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그 이론을 신앙에 접목하면 훌륭한 신앙의 훈화와 같은 게 될 수 있어서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이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임계점'이라는 용어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이 용어는 왠만해서는 다 이해할 수 있는 용어인데 일반적인 사람은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겁니다. 검색을 해서 찾아보면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해를 돕고자 하나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물은 섭씨 100도에서 액체에서 기체가 됩니다. 아무리 온도를 99도까지 올려도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가 되기 위한 전조 단계는 될 수 있어도 기체가 되지는 않습니다. 100도씨가 되어야 기체로 되는 순간이 됩니다. 이 원리를 알게 되면 임계점이라는 용어가 좀 더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러니까 액체에서 기체로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한계점 이게 바로 임계점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100도씨에 도달하지 않으면 절대 기체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물이 수증기로 되기 위한 임계점은 100도씨라고 생각하면 보통 일반인 수준에서는 이 정도 이해를 하면 어느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럼 이런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한번 유혹의 임계점을 설명해보겠습니다. 유혹의 임계점이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정한 하나의 새로운 표현입니다.
자, 그럼 유혹의 임계점이 만약 100이라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그럼 99까지 유혹지수가 된다고 해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1만 더 첨가가 되면 그때 비로서 유혹의 임계점에 도달해 바로 유혹에 넘어가는 지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정도 설명이면 이제 유혹의 임계점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잡혔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모든 죄에는 유혹의 임계점이라는 게 있을 겁니다. 이건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비근한 예를 들면 사람마다 잘 넘어가고 극복이 되지 않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누구는 어떤 죄는 그냥 죄도 아닌 것처럼 잘 넘어지지도 않는데 반해서 어떤 사람은 유독 어떤 죄에서 방금과 같은 죄에서 잘 넘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학문적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사람마다 유혹의 임계점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유혹의 임계점이 높으면 좋을까요 낮으면 좋을까요? 당연히 높아야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상대로 해서 실험을 해보니 왜 어떤 요인 때문에 유혹의 임계점이 다른지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서두에서 제가 유혹을 이기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유혹은 물리학이나 전자공학에서 사용하는 저항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이제 거의 이 이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저항은 의학에서 사용하는 면역의 개념과도 같습니다. 면역이 형성되려면 여러 번 싸워서 항체를 형성해야만 합니다.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혹에 넘어간다고 할 때는 조금 전 예를 든 상황을 가지고 설명한다면 99까지는 도달해도 마지막 1만 초과하지 않으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아무리 99까지 견뎌냈다고 해도 마지막 1에서 결국 넘어지고 마는 것이 됩니다. 이 1이라는 수치는 물리적인 개념으로는 1이 되지만 같은 동일한 물리량이 아닙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 1을 이기느냐 마냐에 따라 유혹에 넘어가느냐 아니냐의 승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혹의 임계점이라는 게 있다면 그 임계점을 높혀 놓아야 자신이 유혹을 견디는 힘이 강하는 것을 암시하게 됩니다. 그 유혹의 임계점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 번 유혹에 넘어져도 계속 싸워서 포기하지 않고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임계점을 최대한 올려 놓는 게 가장 좋은 비결이 되는 것이 됩니다.
이걸 신앙에 비유하자면 아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라는 게 있습니다. 자신에게 치명적인 결점과도 같은 유혹에 넘어지는 죄가 있어도 성사를 여러 번 보는 한이 있더라도 자꾸 보다보면 언젠가는 유혹의 임계점을 점차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수치가 높게 점차 설정이 된다면 그만큼 나중에는 유혹의 임계점이 높아져서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생활묵상이기 때문에 맞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추적용해본다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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