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내 한 방울의 물을 어떻게 마르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복음: 루카 9,22-25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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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 가운데 폐허가 된 주유소가 있고 그곳엔 물 펌프 하나가 유일하게 남아있었습니다. 목이 말라 실신할 지경에 이른 나그네가 주유소의 물 펌프를 발견하고 달려갔습니다. 거기엔 바가지의 물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팻말이 있었습니다. “이 펌프 밑에는 엄청나게 시원한 지하수가 있어요. 누구든지 이 펌프 물로 갈증을 해소하세요. 명심하세요. 펌프 앞에 놓인 바가지의 물은 절대로 마시면 안 돼요. 이것은 ‘마중물’. 잊지 마세요. 다음 분을 위해서 ‘마중물’을 꼭 채워놓고 가세요!”
우리 안에도 마중물 한 바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잃지 않으려면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기처럼 됩니다. 모기는 자기의 생명을 잃지 않으려 남의 생명을 취합니다. 그렇다고 죽지 않는 게 아닙니다. 생존의 불안함 속에서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고 외롭게 죽어갑니다.
고등 동물이 될수록 한 바가지의 물, 곧 생명, 혹은 피는 관계를 맺는데 투자됩니다. 모든 관계는 피로 이뤄집니다. 피는 나의 돈, 먹을 것, 명예, 권력 등 내가 가졌다고 믿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사람은 죽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어 놓으면 가정이나 사회에 소속되게 됩니다. 그 관계가 나를 불안해서 해방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지려면 먼저 내어 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이것을 제 나름대로 이름을 붙이자면, ‘마중물 법칙’이라 하겠습니다. 물을 부을 때는 마치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투자는 이익을 예상하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부은 물보다 더 많은 물이 나오리라는 희망과 믿음이 없다면 물을 붓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주는 사랑도 투자냐고 할 수 있습니다. 이익이 없는 투자는 없습니다. 분명 그 투자는 남편이나 사회, 혹은 자녀가 자라서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등의 이익을 줍니다. 양심의 칭찬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투자가 천국을 만듭니다.
그런데 목숨은 하나뿐입니다. 어떻게 하나뿐인 목숨을 투자할 수 있을까요? 사실 모든 게 목숨과 연계됩니다. 돈과 명예, 먹는 것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로 시험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그릇에서 투자하는 게 몇 배로 나오느냐가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목숨도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삼사라’에서 어떻게 한 방울의 물이 마르지 않겠느냐는 화두를 던집니다. 그 방법은 바다에 자기를 던지는 것 뿐입니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사람은 저절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코디 리라는 청년은 자폐를 앓고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메리카 갓 탈렌트에서 우승하여 100만 달러를 어머니에게 선물합니다. 그는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이고 빛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도 부모에게 그렇게 투자할 줄 압니다. 자기 생명이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원천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하느님께 투자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 한 방울의 물을 지키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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