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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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02-19 | 조회수9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오늘 복음은 최후의 심판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을 단 한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그건 바로 ‘사랑’입니다. 제가 토요일 날 올린 이웃 본당 신부님의 강론에 대해 올렸는데 그 신부님이 제가 마지막으로 성사를 보고 개신교로 갈 생각으로 성사를 봤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신부님이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시면서 딱 하나 성경을 인용하신 복음이 또 바로 오늘 복음입니다. 그때 말씀하신 내용 중 지금도 기억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게 근 7년 전 일입니다. 제가 신부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나중에 하느님을 만나게 될 때 심판 때 개신교로 가서 혹시 그게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그게 겁이 난다고 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그게 문제라면 신부님이 혹시 그거 때문에 형제가 만약 벌을 받게 된다면 신부님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신교에 다시 가고 싶으면 자유롭게 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의외의 반응이었습니다. 이왕 천주교로 개종을 했으니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여기서 잘 생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는 반응이 보통 일반적인 반응일 것입니다. 이건 신부님이 아마 제가 면담성사를 할 때 저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개신교로 다시 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설령 개신교로 간다고 해도 신부님은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단지 종교를 옮긴 이유로 해서 마지막 심판의 잣대로 판단하실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왜 제가 이런 내용을 언급했을까요? 바로 이 내용이 오늘 복음이 전하는 주요 핵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사람의 모습을 하면 다 하느님의 자식이고 그 사람을 예수님처럼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사랑이 있어야 하고 또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또 미움과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도 그만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건 절대적으로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물론 원수도 사랑하라고는 하셨지만 이런 사람까지 사랑하긴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건 하느님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빌어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그 평화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도 상기하면 그게 아마 명확할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한 길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랑 실천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내가 기워 갚아야 할 보속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랑 실천은 내 죄를 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살면서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는 작은 예수님이 되기를 노력하는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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