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꽃힌 신부 ★ 제1부 18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려면?(2)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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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은경 | 작성일2024-02-23 | 조회수6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pp83-89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1부 거룩한 내맡김 영성 18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려면?(2)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 2010. 01. 15. 당신은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사랑한다면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분을 ‘참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가? 그분이 안 계신다면 정말 못 살 것 같은 깊은 절망적 느낌이 드는가? 그분으로 인해 ‘늘 기쁘고’, 그분으로 인해 ‘행복’이 넘쳐 나고, 그분으로 인해 ‘삶의 참의미’를 느끼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서, 더 나아가 하느님을 진실로 뜨겁게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분께 내맡길 수 없다. 절대로 내맡길 수 없다. 아무리 나이 어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 그 어떤 기준이나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선뜻 그리고 쉽게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길 수는 없다. 하느님과 씨름한 야곱(창세 32,25 참조)처럼 하느님과 씨름을 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과, 나를 통하여 하느님께 내맡긴 분들을 보면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겨 드렸다고 생각하여 봉헌 서약 미사까지 치렀다 하더라도 단 1%라도 내맡겨 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머지않아 삶의 모습을 통하여 그 증거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하느님께서 드러나도록 해 주신다. 참으로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여 주신다. 자신을 적당히 좋아하는 남성에게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쉽게 내맡기는’ 어리석은 여성이 있을까? 또 자기에게 너무 쉽게 모든 것을 맡긴 그런 여성을 남성이 과연 끝까지 사랑하고 책임져 줄까? ‘적당히 쉽게’ 이루어진 모든 일은, 그 일이 이루어졌던 그 모습 그대로 적당히 쉽게 사라져 버린다. 모든 인간적인 것은 아무리 그것을 확실하고 완전하게 이루었다 하더라도,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언젠가는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과는 다르시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100%를 다 맡겨 드리기만 하면, 그때부터 하느님께서 ‘우리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신다. 아주 영원히 확실하게 말이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셔서 보잘것없는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시겠는가? 당신은 당신이 소유한 모든 것 중에서 하느님께 자랑스레 내드릴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대단한 재력? 그 잘난 미모와 건강? 그 똑똑한 머리와 재주? 그 잘난 자식들? 그 밖의 무엇을? 하느님께서는 세월과 함께 썩어 없어질 우리의 것들을 전혀 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우리의 사랑만’을 원하신다. 자신을 창조해 주신 주인으로 알아 모시고 당신을 ‘흠숭(사랑)해 드리는 것’ 오직 하나만을 원하신다. 사실 하느님께는 그것조차 필요 없으시지만 말이다. 우리가 그분께 그렇게 해 드릴 때 비로소 우리의 영안靈眼이 열려 인류 태초에 마귀의 간계에 빠져 감쪽같이 가려져 있던 ‘진리’가 우리 앞에 환히 드러나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원래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의 모든 것이 ‘원래 하느님의 것’인데 그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린다’는 것도 사실은 잘못된 말이다. 먼저 그동안 ‘하느님 것을 내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던 우리의 ‘도둑놈 심보’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그저 단순히 “주인님, 받으시옵소서!”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더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마저도 생각하지 않으시고, 그저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청하는 것’만을 바라신다. “사랑하는 나의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하고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안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을 향한 사랑을 먼저 간절히 청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조물의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진다.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서로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사랑으로 관계가 맺어진다. 사랑 없는 존재는 이미 그 존재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창세 1,27 참조). 사랑하는 사람을 간절히 원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사랑의 경험이 있다면 잠시 당신의 과거로 돌아가 보시라. 그 사랑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어느 정도의 정성을 기울였었는가? 하느님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얻기 위하여 온 ‘마음’과 ‘힘’과 ‘목숨’까지 다하여야 한다 (신명 6,5 참조). 그럼에도 오늘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너무 굶주리셔서 일단은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려는 간절한 마음’과 그에 따르는 조그만 ‘정성’만을 요구하신다. 내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청하면서 바쳤던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 “사랑하는 나의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를 바치며 그분의 사랑을 청하기만 하면 된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편에서 그분을 향한 사랑을 청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그리하여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려면 나의 경험을 그대로 따라 하시라. 내가 경험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만일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은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사랑하는 나의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를 약 3개월 정도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열심히 바쳐 보시라. 성 글라라 수도원에서 번역한《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이라는 책에서 수덕 생활을 오래 한 영성 수련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3개월 정도면 기도의 효과를 본다고 말하였다. “3개월 동안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영혼은 틀림없이 완덕에 도달한다.”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28) 내가 직접 체험해 보았다. 분명히 그대로 될 것이다. “그대로 되었다.”(창세 1,7) 고대부터 여러 종교에서는 ‘반복되는 짧은 거룩한 단어’가 모여서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곧 ‘무한한 능력(에너지)’을 발휘하는지를 이미 잘 알고서 ‘기도(만트라)’를 바쳐 왔다. ‘인디언들’은 오늘날에도 자신의 소원을 ‘1만 번’만 외우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고 한다. 우리 교회의 전통 안에도 성경 구절이나 짧은 기도(예수의 기도 등)를 반복해서 바치는 기도가 있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그의《신심 생활 입문》 ‘제13장 열망, 화살기도 그리고 선한 지향’에서 “화살기도는 영적 은둔과 더불어 신심이 진보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며, 화살기도 없이는 관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노력한다 해도 헛수고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고, 현대 영성의 대가라고 하는 토머스 머튼 신부도 “자꾸자꾸 반복하여 말하고 되뇌어라! 수시로! 그리고 끊임없이! 그것이 기도이다!”라고 하였다. 3개월 이상 화살기도에 집중하면 분명 하느님의 사랑을 얻어 내어 서서히 하느님을 뜨겁게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을 얻을 수 있다는데 약 3개월을 꾸준히 기도할 수 없겠는가? ‘바쁜 현대 생활’이라 하여 그것이 그리도 어렵단 말인가? 그 옛날 아낙네들이 남편이나 자식의 큰일을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한 후 정화수 한 사발 떠 놓은 다음 손바닥이 닳도록 신령님께 싹싹 빌며 백일기도를 올린 얘기를 모르는가? ‘잠시’의 이 세상일을 위해서도 그런 정성을 기울일진데, 자신의 ‘영원한 복락’을 위해 그 정도의 정성도 기울이지도 못한다면, 아예 지금부터 신앙생활을 포기함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하느님을 얻는 여러 가지 방법(순교, 헌신적 봉사 등) 중에서 이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 방법으로 하느님을 진실로 뜨겁게 사랑하게 될 때,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하느님께 내맡길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저의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당신께 저의 모든 것을 기어이 내어 맡기고, 그럼으로 제가 오로지 당신만을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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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욱 신부님의 책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가 출간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참으로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사는 것, 즉,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삶입니다.
책 구입 문의: '끊임없는 기도모임' 카페 http://cafe.daum.net/Praywithoutcea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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