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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정을 이입하지 않은 사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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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23 조회수88 추천수1 반대(0) 신고

아나운서는 방송하려는 것을 기록한 대로만 읽어야 하는가?

보도하려는 것이 화가 나면 화 나는대로 분노하며, 재미가 있으면 재미가 있게 하여야 할까 아니면 정치인들이 연설하듯이 하여야 할까를 잠시 묵상하였습니다.

 

감정은 방송할 때 그것을 시청하는 자들의 몫이지 방송국이 전달하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즉 연예인들이나 영화계의 사람들이 하듯이 하면 처음에는 재미가 있어서 청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이 모일거랴 생각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옷과 표졍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그 이미지가 시청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고착화되면 사실 보도는 신빙성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방송국의 간판스타는 사실 보도라는 뉴스에 달려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나운서가 말을 하는데 있어서의 자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독서와 복음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자기의 것으로 감정이입 하는 것은 듣는 이들의 자유사고를 감소하게 합니다.  어떤 이들은 독서는 선포하듯이 해야 하는 것이니까 정치에서 연설하는 이가 하면 좋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독서와 복음은 자신의 감정을 넣어서 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또 다른 이들은 그리스 아테네 방송국에서 하는 뉴스처럼 하면 매끄럽고 전달이 잘 되리라고 말들을 합니다.   여기에서도 듣는 이들의 자유사고는 배제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리누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것을 전달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 많은 이들의 각양각색의 삶은 그러한 이들이 듣고 느끼는 감정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주입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말입니다.   랍비들이 리듬을 타듯이 성경을 읽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러한 독서와 복음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펼쳐서 읽으시고 이 말씀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여기에서의 예수님은 어떻게 복음을 읽으셨으며 즉 어떻게 선포하셨을까요?  

또한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모세가 하느님과 말씀을 나눌때는 어떠했을까요?

 

독서와 복음은 옛날처럼 글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을 선포하는데 있어서 고저장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만 우리는 평서문을 읽는 것처럼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감정을 넣어 하는 것은 그리스도 수난기 뿐임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오로 서간은 읽는데 있어서 매끄러운 독서로 참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시엔엔 뉴스에서는 약간의 표정을 넣어 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별로 좋은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사실이라는 것을 전달해야 좋을 듯 합니다.  인기도 사실 보도가 죽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보도가 감정을 이입한 것은 어쩌면 거짓이라는 오명도 들을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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