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바리사이와 율법학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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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2-27 | 조회수14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가 결혼을 하고 싶으나 나이가 많고 목소리와 생김새가 못생겨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저를 피해 갑니다. 절 잘아시는 삼성 연구소장님도 저에게 늘 하시는 말씀이 10kg더 살좀 . 밖에 나가는것도 반 포기 상태입니다. 줄곧 집에 있으면 tv를 봅니다. 역사드라마를 잘보는데요 요즘 보는것이 고려거란전을 봅니다.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서 현종을 거란에 친서하도록 넘기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현종이라는 왕도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른것도 아니고 강조가 쿠데타를 일으켜 광조를 죽이고 허수아비 왕으로 내세운것이 현종입니다. 고려 2차 침범시 몽진에 몽진을 거듭하면서 국민들예게 하인 대접보다 더 심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현종을 바라보면서 비록 현종은 불교 신자였지만 그 중심에 부처님이 있었습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결정적인 행동을 하기전에 부처님부터 찾았습니다. 최질과 박진에 의해 친서하라고 끌려가는데 마지막 찾은 곳이 주변 법당이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찾은 곳이 법당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나보다는 불가의 義를 찾았습니다. 주변에서 보기에 저렇게 풍전등화 같은 위치에서 왕으로 행복했을까? 불가의 의를 찾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었기에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의 세종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가식적인 행동. 말만하고 행동이 없는 행위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혼이 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혼을 내시는것은 현종이 최질을 제압하기전 마지막으로 설득하는것과 같습니다. 너 그렇게 행동하면 하느님 부재 상황으로 넘어가니 좀. 이런 애타는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보시고 통곡하신 예수님입니다. 죄인들의 멸망을 바라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두 회개로 천국으로 가는것을 진심으로 바라십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십자가 죽음을 스스로 바라시고 돌아가셨을까요? 항상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나의 행복은 찾아야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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